대학교수와 기자는 오늘날 최고의 지식인이자 여론 주도층이다. 교수는 학부와 대학원 교육을 통해 미래의 직장인과 학문 후속세대 양성에 궁극의 책임을 진다. 기자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올바른 여론형성의 첨병 구실을 한다. 교수와 기자계층의 지적'정신적'도덕적 수준에 따라 그 사회와 국가의 명운이 갈린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하다. 특히 문화와 지식의 세기인 21세기에 교수와 기자 집단의 사회적 책무는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10여 년 전부터 국립대교수 '철밥통' 얘기가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다. 언론사 기자들이 만들어낸 기막힌 신조어였다. 강철로 만들어진 밥통이니 썩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으니 영구적인 수명은 자명한 이치. 대학사회를 언론사가 평가하기 시작한 이후 특히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로 한국사회가 뿌리째 요동쳤을 때 보수 언론사가 생산'유통시킨 희대의 발명품 철밥통!
부족한 견문 탓이겠지만, 나는 국가 최고의 지식인 집단을 철밥통 운운하며 손가락질하는 기자와 언론사를 보지 못하였다. 나라와 민족과 세계의 미래기획을 담당하는 젊은 세대를 양성하는 전문가 집단을 미증유의 철밥통으로 비하하는 다른 나라 언론사와 기자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무능하고 게으르며 밥이나 축내는 벌레 수준으로 교수들을 싸잡아 매도하는 타국의 언론 매체와 종사자들을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사건'이 발생한 이후 한국의 모든 언론사, 특히 국영방송사인 한국방송 기자들에게 날아든 신조어 '기레기'는 충격과 공포로 다가왔다. '기자 쓰레기'라는 섬뜩한 용어에 담긴 직선적인 비난과 공격의 화살은 신랄하고 무서운 것이었다. 기레기는 정부와 여당, 권부와 권력자들이 나눠주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 적는 언론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절망의 분출이었다.
때마침 국립 경북대 총장 재선거 소식이 들린다. 절차상의 하자 때문에 재선거를 하게 됐다는 얘기다. 초중등학교에서도, 경로당에서도, 동네 구의원 선거에서도 적용되는 것이 이른바 '직선제'다. 하물며 최고 지식인들이 모여 있는 국립대학의 장을 뽑는데 '직선'이 아니라, '간선'을 강제한 것이 교육부고, 그것을 나팔수처럼 선전해댄 것은 언론이었다.
그렇게까지 국립대 교수들이 부패하고 무능하며 게으르고 공짜 좋아하는 인간들인가. 직선제 폐해의 가장 큰 피해자로 사태의 핵심을 인식하고, 내부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제도 개선에 나가려던 그 참에 강제된 직선제 폐지가 야기한 총장 재선거라니! 간선제로 전환한 모든 국립대학 총장 선출에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와 기자들은 그런 문제에는 한사코 눈과 귀와 입을 닫고 있다. 정부여당의 거수기도 아닌데 그 까닭이 무엇인지 자못 궁금하다.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고귀한 생명이 죽임을 당하고, 유가족들이 말 못 할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유수의 언론사들과 기자들은 유병언의 시신과 그 아들과 여성 경호원의 밀착관계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종편 '황색언론'이 주도적으로 앞장서고, 여타 방송과 신문이 뒤를 따르는 희대의 야만과 부패와 탐욕과 선정성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공정한 여론형성을 위한 정확한 사실 보도와 신랄한 비판과 대안 제시가 기자와 언론사의 첫째 가는 존립 근거 아닌가!
어째서 기레기라는 통렬한 신조어가 인구에 회자되었는지, 그로 인해서 기자 되기를 포기하겠다는 청춘들이 등장했는지, 곰곰 돌이킬 일이다. 언론과 기자가 스스로를 검열하지 않고 세상과 역사에 당당하게 민낯을 드러내고 정론을 구사할 때 국가의 미래가 있는 것이다. 권력과 돈과 인연에 얽매이는 한 기레기라는 용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용기 있는 언론사와 기자들을 찬미하고, 성실하고 진실한 교수들이 후학을 양성하는 아름다운 나라와 미래를 꿈꾼다. '철밥통'과 '기레기'라는 저주받을 용어가 사라지고, 남북한과 동아시아, 세계와 우주를 사색하고 기획하는 최고 전문가 집단의 조속한 도래와 재탄생을 기원한다.
김규종/경북대 교수·노어노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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