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살갗 닿기

대표적인 콩글리시로 '스킨십'(skinship)이라는 말이 있다. '혈족 관계'라는 뜻의 'kinship'과 '피부'를 의미하는 'skin'이라는 단어를 합쳐 만든 조어라고 한다. '피부의 상호 접촉에 의한 애정 교류'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국어사전은 '살갗 닿기' '피부 접촉' 같은 우리말로 순화시켜 사용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살갗 닿기로 키스를 꼽을 수 있다. 키스는 원시시대에 여자를 감시하는 목적으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남자가 사냥하러 나간 사이 여자가 식량을 몰래 먹지나 않았는지 알아내기 위해 입 안 구석구석을 혀로 검사한 행위가 키스의 유래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내가 와인을 마시지나 않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술을 대면서 냄새를 맡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키스의 시초가 됐다는 설도 있다. 남녀 간의 달콤한 애정 행위가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참으로 역설적이다.

대표적인 살갗 닿기인 악수도 불신 풍조에서 유래됐다.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상대에게 확인시켜주기 위해 손바닥을 내보이며 오른손을 맞잡는 풍습이 인사법으로 굳어졌다. 악수를 하면서 장갑을 벗는 것도 그 안에 작은 무기를 숨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위생적인 측면에서 악수는 나쁜 인사법이다. 감기와 인플루엔자, 설사 등 각종 전염병을 옮기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미국의학협회저널이 '의료기관에서는 악수를 삼가라'는 권고안까지 내놓았을까. 영국의 한 대학연구팀은 악수와 하이 파이브, 주먹인사(fist bump'서로 주먹을 맞대며 하는 인사) 등 세 가지의 유형의 인사법이 세균을 얼마 정도 옮기는 지 비교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주먹인사는 세균을 옮기는 정도가 악수의 20분의 1밖에 안 됐고, 하이파이브는 악수의 절반에 그쳤다.

신종플루, 조류독감에 이어 에볼라 바이러스에 이르기까지 치명적인 전염병의 확산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아프리카를 제외한 다른 세계로 번질 조짐이 없지만, 인구가 밀집해 있고 교통이 발달한 지역으로 에볼라가 전파될 경우 엄청난 공포와 혼란, 재앙이 전개될지도 모른다. 보건당국은 에볼라와 같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철저한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악수하지 않기 등을 권장하고 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악수하지 않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불신 풍조에서 비롯된 서양인사 대신 우리 전통의 인사법이 이참에 보편화되었으면 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