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대 대선을 계기로 크게 유명해진 '일베' 사이트, 곧 '일간베스트저장소'의 게시글 제목들을 살펴보면, '김치년들은 왜 공을 못 피하냐' '조만간 홍어들 미쳐 날뛸 듯' '똥남아 새끼들 존나싫었던게' '좌좀들한테 묻는다' 등이 나온다. '김치년'은 한국 여성을, '홍어들'은 호남 지역인들을 모욕하는 말이다. '똥남아'는 동남아 출신을 비하하는 인종 차별 표현이다. '좌좀'은 '좌빨좀비'를 줄인 말로 '좌파'를 공격할 때 쓴다. 이처럼 일베 게시글 가운데는 단순한 재미 수준을 넘어 여성 비하, 지역감정 조장, 인종 차별 등 증오심에 바탕을 둔 반사회적 내용이 많다. 민주화 세력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정치적 공격성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얼마 전 신문에는 5'18묘지에서 절하며 사죄하는 일베 회원 2명의 사진이 실렸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매도하고, 희생자들을 '홍어'로 비하한 것과 관련하여 검찰에서 기소한 직후였다. 또 세월호 참사 이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이 누리꾼들을 '노무현 대통령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식사했다'는 내용의 허위사실과 사진을 유포한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해당 사진이 주로 일베에서 유포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와 유족들을 직접 모욕하여 경찰에 입건된 일베 회원도 있다. 일베 이용자들이 법적 책임을 지게 된 사건들이 잇달아 나타난 것이다.
일베 사이트가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공격적이고, 반사회적 글로 도배된 것은 아니었다. '디시인사이드'에서 2009년에 파생된 유머 중심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일종의 '오타쿠, 폐인 문화'를 내걸고, 재밌거나 놀라운 사진과 글을 올려 정보를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는 곳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추천을 받으려고 자극적 표현, 기발한 정치 풍자물을 만들어 존재감을 과시하고 심리적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2012년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친여반야 성향의 극우 보수 누리꾼들의 총본산처럼 변질하였다. 민주사회에서 정치적 표현이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이 극히 모욕적이고 명예훼손에 가까우며, 심지어 허위 사실을 이용한 경우가 많아 사회적 고민과 우려가 크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일베 사이트는 여전히 일부 누리꾼들에게 '화려한 유혹'이 되고 있다. 어떤 누리꾼은 '일부심'(일베+자부심)에 도취하여서, 어떤 누리꾼은 '애국보수'라는 영웅 심리에서 표현의 수위를 한껏 올린다. 게임을 하듯 레벨을 높여 인기를 얻으려고 합법과 탈법의 경계를 쉽게 넘나든다. 일베의 유혹은 일반 누리꾼에 한정되지 않는다. 보수 성향의 정치 세력에게도 강한 유혹으로 작용한다. 선거 때만 되면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감정을 인터넷 공간에 퍼트려 덕을 보려고 일베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국회의원 등 유명 정치인들이 일베 사이트에 접속해 있는 사진은 일베 이용자들을 더 '오버'하도록 부추기는 자극제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일베 사이트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일베 이용자임을 밝히는 경우가 없다는 사실이다. 우연한 기회에 일베 회원이거나 일베에서 활동한 사실이 밝혀진 연예인 등은 큰 사회적 지탄을 받는다. '훈남'으로 유명해져 텔레비전 출연까지 한 젊은 교사는 과거에 쓴 '일베스러운' 댓글 때문에 하루아침에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일베 회원들이 일상에서 '일밍아웃'(일베+커밍아웃)을 하지 못하는 것은 글의 내용과 활동이 전반적으로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국민의 정서에 크게 어긋나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일베할 자유'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표현의 자유는 다른 사람들의 '존엄권'과 '행복 추구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누려야 한다. 자신의 잘못된 발언이나 행위에 대해 분명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일베의 화려한 유혹에서 벗어나 여성 비하, 지역감정 조장, 인종 차별, 민주 세력에 대한 매도 등의 반사회적 태도를 버리고, 모두가 화합하고 공존하는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를 정상적으로 규율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일베충'이란 모욕적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정복/대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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