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김광규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중에서)

지난 4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밟기 위해 모교를 방문했습니다. 대학 도서관 들어가는 모퉁이에 피어났던 모란이 보고 싶었다는 것이 숨은 진실이지요. 포장되지 못한 도로, 막걸리 냄새로 가득했던 식당, 대강당 앞 민주광장. 모두가 나에게는 실존적 장소입니다. 최루탄 냄새로 가득했던 과거의 흔적들은 매끈하게 지워지고 '~플라자'라는 이름을 지닌 멋진 건물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었습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여학생(2학년이라고 했습니다)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이냐고. 대답이 절묘했습니다. 약속한 남자친구가 아직 오지 않는 것이라고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여기가 민주광장이었다는 건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선배들에게 들은 것 같다고 하면서 눈은 남자친구가 올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아쉬움에 다시 물었습니다. 지금 힘든 일은 무엇이며, 미래에 무엇을 할 예정이냐고. 돈 많이 벌어 해외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고는 남자친구가 나타났는지 급하게 달려갔습니다.

그랬습니다. 민주광장이 이 학생들에게는 현재적인 의미도 없을뿐더러 추억이 되지도 못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억이 현실에서는 그리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것, 우리가 40대는 되어서야 깨달은 지독한 현실을 그들은 20대에 이미 체득하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니, 통일이니 하는 거대담론들은 그들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민주광장 옆 도서관에 들렀습니다. 여전히 도서관은 만원이었습니다. 공부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민주광장에서 느꼈던 자유로움과는 풍경이 달랐습니다. 사실 1980년대도 그랬습니다. 밖에는 최루탄 냄새로 가득한데도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가 지닌 두 얼굴이기도 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당시는 밖에 있는 사람이든, 도서관에 있는 사람이든 시대에 대한 인식과 고민은 비슷했습니다. 시대를 아파했고, 미래를 고민했습니다. 최소한 거대담론이 지배하고 있던 시대였으니까요.

거대담론이 사라진 대학은 말 그대로 자유로웠습니다. 정기간행물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학생을 만났습니다. 4학년이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가장 고민되는 것은 취업이라고 했습니다. 최소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 사람 노릇을 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는 말도 했습니다. 소위 '88만원 세대'의 전형적인 얼굴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조금 전 만났던 여학생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신처럼 크게 고민하지는 않더라는 말에 피식 웃었습니다. 자신도 그랬다고. 하지만 그 학생이 어리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그때는 그렇게 즐기면서 살아야 한다고. 그래야 지금 덜 억울하다고.

그렇습니다. 지금은 개별적인 담론들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다른 시선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나 원망 같은 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거기에 집착하고 있었던 나, 무언가 내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추억, 최루탄과 피로 그들에게 제공한 민주주의에 대한 고마움의 말을 기대한 내가 부끄러웠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사람과 함께 그들의 시대,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밟으며 깨달은 슬픈 진실이었습니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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