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2국과 3국

중국 송(宋)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원숭이를 무척 좋아해 집에서 원숭이를 키웠다. 그런데 그 수가 많아지면서 먹이 주는 일이 큰 부담이 됐다. 저공은 고민 끝에 먹이로 주던 도토리 수를 줄이기로 했지만, 갑자기 줄이면 원숭이들이 싫어할 것 같아 묘안을 짜냈다. 그는 원숭이들에게 "앞으로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를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원숭이들은 "아침의 도토리 수가 저녁보다 적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저공이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며 아침, 저녁의 숫자를 바꿨고, 다들 좋아했다.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얘기다.

최근 대구시의 조직개편안이 발표됐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새로운 체제로 시정을 이끌려고 취임하자마자 조직개편 의사를 밝혔고, 대구혁신 100일 위원회와 시는 한 달 만에 조직개편안을 만들어 냈다. 입법예고 등 관련 행정절차를 거쳐 이달 중순쯤 관련 조례 개정(안)이 시의회를 통과하면 곧바로 개편 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조직개편안의 핵심 중 하나는 경제 분야의 기능과 부서를 재편하는 것이다. 현재 경제통상국, 창조과학산업국, 첨단의료산업국 등 '3국'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위원회와 시는 이 중 첨단의료산업국을 그대로 두고 경제통상국과 창조과학산업국을 통합해 대국 체제인 '창조경제본부'로 재편하는 '2국'체제안을 내놨다.

이번 조직개편은 시정을 역동적으로 새롭게 시작하려는 새 시장의 욕구와 갈망을 강하게 반영했다. 새 시장이 추구하는 방향과 꼭 이루고 싶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조직적 기반을 갖추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이를 위해 조직을 개편하고 부서를 조정하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제대로, 또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으로의 개편은 대환영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작업에서 조직개편의 내용보다는 형식을 바꾸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는 것이다.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 중 하나는 경제 분야 기능 및 부서를 개편하는 것인데, 겉모습을 바꾸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다. 경제 부서 체계가 '2국'이면 어떻고, '3국'인들 또 어떨까. 그 속에서 어떤 기능과 업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담아내고 배치하느냐가 중요한데 이보다는 무조건 한 개 국을 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너무 강했다. 조직개편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는 내내 안쓰럽기까지 했다.

오히려 그 시간에 핵심 과제를 발굴하는 데 더 힘을 모았으면 어땠을까. 권 시장 취임 초 '브레인' 기구인 100일 위원회에 부여된 시간은 100일뿐이다. 겉모양을 바꾸는 일보다는 알맹이를 채우는 작업이 더 급하고 필요했다. 국 하나 없애고 통합한다고 해서 그 국 아래 있던 과나 계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부서가 통합'조정되고, 없어지고,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그 안의 기능, 업무가 사라지거나 바뀌는 것은 거의 없다. 하던 일은 그대로 다 해야 한다.

더 효율적인 업무와 원활한 협력을 위해 부서를 재편하는 것은 좋다. 이번 조직개편이 대구 경제가 도약하고, 시민이 잘살게 되는 첫 단추, 반석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무조건 국 하나를 없애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짜맞추기식 조직개편에 너무나 많은 정력과 인력을 소비한 것 같아 안타깝다. 국의 수와 명칭이 중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부디 조삼모사가 되지 않기 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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