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믿고 맡길 시설은 왜 없는가?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 학대 사건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23년째, 아이 돌보는 일이 가족만의 몫이 아니라 사회적 책무임을 법제화하고 정책을 세우고 재정을 투입해온 지 20년이 넘어도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여전하다. 2008년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서비스라고 다를까? 학대, 종사자 허위 기재, 부당 청구, 불량 식자재 사용 등 신문 기사화된 요양시설의 문제는 어린이집의 그것과 놀랍게도 닮아있다.

작년 우리나라 출산율은 1.13으로 1970년 이래 두 번째로 낮았고, 노인 인구는 현재 전체의 12%, 3년 후면 14%에 달한다고 한다. 저출산고령사회 대한민국에서 보육과 장기요양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올해만 보육과 장기요양 예산은 각각 약 5조 원에 달한다. 상당한 재정이 투입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아이 가진 부모와 부모를 모시려는 자식들은 '믿고 맡길 시설이 없다'고들 말하는가?

지난 5일 정부가 발표한 '제1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은 우리나라 사회보장정책을 평가하면서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사회 서비스의 제도화 수준이 낮고, 서비스 질 문제도 지속'되고 있는 것을 우리나라 '사회보장제도의 미성숙, 낮은 급여' 문제에 이어 두 번째 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이어서 '민간 공급자에 서비스 공급을 주로 의존'하여 '왜곡된 공급 행태'가 발생하고 '저임금 일자리를 양산'하는 등 사회 서비스 질 관리에 소홀했음을 적시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부터 매년 국공립 보육시설을 150개씩 확충하겠다고 밝힌다.

어린이집은 작년 말 기준으로 총 4만 3천770개소다. 이 중에 국공립이 5.3%, 사회복지법인과 법인'단체 어린이집을 합하여 8.6%다. 절반이 넘는 54%를 차지하는 것이 평균 인원 15명으로 제일 작은 규모인 가정 어린이집이고 33.7%가 민간 어린이집이다. 150만 명에 약간 못 미치는 수의 아동이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51.8%가 민간 어린이집을, 24.5%가 가정 어린이집을 이용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제도화된 노인장기요양서비스의 공급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1년 통계에 의하면 전체 노인요양시설 3천864개소 가운데 국공립 요양시설은 고작 2.9%에 불과하다. 요양시설의 61%가 개인이 운영하는 요양시설이다. 이 개인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시설의 약 82%가 9인 이하 시설이다. 전체 노인요양시설에서 40%를 차지하고 있다.

보육과 장기요양서비스 공급에서 정부는 서비스 이용자에게 재정을 지원한다. 정부로부터 구매력을 획득한 이용자는 시설을 선택하고 시설은 이용자 수에 따라 정부로부터 서비스 비용을 환급받는다. 선택과 경쟁, 시장원리에 의한 사회 서비스 공급 방식이다. 이용자를 더 많이 확보할수록 이익이 커지는 시설들이 서로 경쟁하여 서비스 질을 높인다는 가정이다. 경쟁을 위해서는 다수의 공급 기관이 필요했고 정부는 시설 기준을 완화하여 신규 공급자의 진입을 도왔다. 그 결과 소자본, 소규모 개인 서비스 공급자들이 대거 양산되었다. 보육과 장기요양서비스 시장에서 절반이 넘는 시설들이 그러하다.

경제적 유인이 고무되는 사회 서비스 시장 안에서 보육도 장기요양도 쉽게 상품이 된다. 사회적 돌봄의 공간이 가지는 공공성은 너무 쉽게 잊힌다. 이건 개인 사업이고 아동 한 명, 노인 한 명은 기관 수입 얼마로 계산된다. 운영의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서 더 많은 교육과 경험을 쌓은 인력보다 적은 월급으로 버텨주는 종사자가 선택된다. 저임금으로 장시간 일하게 되는 종사자는 쉽게 이직을 결정하고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의 친밀성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 우리는 믿고 맡길 시설을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국공립 어린이집을 매년 확충한다고 한다. 진짜? 생각이 꼬리를 문다. 드디어 시장 방식에 의한 사회 서비스 공급을 철회한다는 의미인가? 이제 정부가 직접 공급 인프라 확충에 뛰어드는 것인가? 사회 서비스 질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인가? 잠깐! 그런데 왜 보육 서비스 공급 구조와 판박이인 노인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해선 아무 말도 없는 거지?

양난주/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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