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국 최고 强小도시 문경] <6>무형문화재 6명 경북 최다

도자기·유기·자수·한지…세계적 예향 띄워줄 '명품' 들

문경은 국가지정문화재 25개와 경북도지정문화재 57개를 보유하고 있는 등 유'무형의 문화자산도 넘쳐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특히 선대부터 터를 잡고 창작에 몰두하는 다양한 무형문화재가 6명으로 경북에서 가장 많다. 최근 문경에서 상주로 건너가 활동 중인 이학천(53'경북무형문화재) 대한민국 도예명장까지 포함하면 7명이다. 국내 대표 문화관광도시에 예술향이라는 명성까지 덧붙여지는 이유다.

전통 찻사발의 본향으로 대표되는 문경도자기는 이미 세계적이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105호 사기장 등 국내 도예명장으로 지정된 7명의 도예가 중 3명이 '문경인'이며, 지금도 40곳의 요장들이 도자기의 고장 문경을 말하며 지역경제의 한 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77호 방짜유기장이 외길 65년 장인혼을 문경에 심고 있고, 천년을 견뎌오면서 조선왕조실록 복원에 쓰였던 한지도 문경 한지장의 작품이다. 여성규방문화의 꽃인 전통자수공예 장인의 예술 터전도 바로 문경이며, 황희 정승 집안에서 500여 년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주 호산춘의 장인도 예술향 문경의 터줏대감이다.

이 밖에 문경에는 국내에 단 한 명뿐인 야철도검(전통검) 기능전승자 이상선(60) 씨와 불교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불화 장인 김종섭(55) 씨가 있다.

문경 고도현 기자 dory@msnet.co.kr

◆무형문화재 사기장 백산 김정옥 선생

200여 년 8代 가업…전수관 지어 체험 행사

문경이 도자기로 유명한 이유 중의 하나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사기장으로는 유일한 백산 김정옥(74) 선생이 바로 문경에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자기와 관련한 지방지정 무형문화재는 전국에 적잖지만 유일한 국가지정 중요 무형문화재가 문경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문경도자기의 정통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는 문경읍 관음리에서 아들 경식 씨와 함께 8대째, 200여 년간 문경도자기의 맥을 당당히 이어오고 있다.

그가 유일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사기장으로 더욱 존경받는 이유는 뭘까? 가업 200년은 결코 흔치 않다. 8대조 김영만이 충북 청원에서 문경으로 옮겨와 터를 잡은 뒤 7대조 김취정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도예인의 길을 걷게 되고, 조부 김운회가 조선 고종 때 경기도 광주의 관영 사기공장(分院'분원)의 사기장으로 발탁되면서 그 이름을 전국에 알리게 된다.

김운회는 19세기 말 조선 마지막의 광주분원이 문을 닫자 고향인 문경 관음리로 돌아와 문경의 전통가마 기법인 망댕이가마를 지으면서 문경도자기를 본격적으로 굽기 시작했고, 부친인 김교수를 거쳐 선생에 이르러 문경도자기의 역사가 완성돼 가고 있다.

또 선생은 200년째 가스가마나 기름가마가 아닌, 문경 고유의 망댕이가마를 고집하고 있다. 망댕이란 사람 장딴지와 같은 모양의 길이 20~25㎝의 진흙 덩어리를 말하는 문경 사투리로, 이 망댕이를 촘촘히 박아 반구형의 가마 칸 3~8개를 나란히 연결한 것이다.

8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그의 노력은 문경도자기박물관 인근에 들어서는 전수교육관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선 관람객들이 선생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고, 직접 선생과 함께 문경 전통도자기를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문경 고도현 기자

◆'마지막 조선 도공' 도예명장 천한봉 선생

이도다완 재현 일본 전역 돌며 한국의 美 떨쳐

'문경요'의 도예명장 천한봉(81) 선생은 이도다완을 재현해낸 '마지막 조선 도공'으로 꼽힌다. 선생이 처음 도자기와 인연을 맺게 된 때는 1920년대 일제의 강제노동으로 일본에서 10여 년의 세월을 보냈던 부친이 광복 이듬해 고향 문경으로 돌아오면서부터다.

그는 14세 때부터 일찌감치 문경 관음리의 한 가마에서 일하며 밤낮으로 도예기술을 익혔다. 18세 때 이미 문경 최고의 기술자 대접을 받았다. 도자기 만드는 일이 그의 숙명이 아닌가 싶을 만큼 도예가 탁월했다고 한다.

1950년대를 거치면서 서민들의 생활용기가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으로 대체되는 시기에도 '우리 것'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갈수록 커졌다. 그러던 중 일본의 한 스님이 조선의 사발을 주문한 것을 인연으로 그의 명성이 외국에서부터 알려지게 됐다.

'이도다완'의 재현자, '마지막 조선 도공'이라는 명함을 내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무렵이다. 그는 각종 찻사발을 중심으로 전통 도자기 재현에 매진했고, 특히 일본에서 각종 전시회를 통해 우리의 전통 도자기문화를 알리는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일본 전역에서 가진 전시회만 120회가 넘는다. 특히 2002년에는 일왕이 일본 왕실에서 사용할 도자기를 선생에게 주문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전통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선생의 찻사발이 드디어 국내에서도 각광받기 시작한다. 그는 1995년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된 데 이어 전통망댕이가마에 적송만을 사용한 전통 도자기문화를 60년 이상 계승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6년에는 경북도 무형문화재 사기장(흑유자기)으로 지정됐다. 조선의 마지막 도공은 이제 두 딸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문경 고도현 기자

◆국내 유일 방짜유기장 이봉주 선생

농암에 유기촌 세우고 '글로벌 한류' 손수 앞장

문경 가은 농암의 납청유기촌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방짜유기장 이봉주(88) 선생의 외길 65년 장인 혼이 스민 곳이다. 그는 국가가 정한 우리나라 유일의 방짜유기 분야 유기장이다.

유기촌 한쪽에 서 있는 비각은 그가 지은 스승의 사적비다. 사적비의 지붕이 모두 방짜유기로 만들어져 있을 만큼 그의 유기 사랑은 특별했다. 2003년 문경에 마지막 보금자리인 유기촌을 세운 선생은 지금 글로벌 한류 첨병으로 우뚝 서 있다. 세계 각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에서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방짜유기는 선생의 것이다. 고 김대중 대통령,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전두환 전 대통령의 만찬에 쓰인 그릇 역시 그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납청방짜유기'라 한다. 납청방짜유기는 순동 16냥에 주석 4량 5돈을 정확히 섞어 만든다. 이물질이 섞이면 단조가 어려워 결코 양을 속일 수 없고, 인체에 해로운 것을 접하면 색이 변해 버린다. 선생의 작품이 인정받는 이유다.

그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으로 어렸을 때 인근에 방짜유기를 만드는 납청마을이 있었다. 22세 때인 1948년 월남해 서울 용산에서 납청방짜유기공장을 하던 스승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뒤 1957년 서울에서 자신의 공장을 설립, 본격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오랜 노력의 결과,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유기장으로 지정받으면서 최고의 유기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1960, 70년대 현대화 물결 속에서도 그는 외길 인생을 굳건히 했다.

경기도 안양, 안산 등지를 거쳐 2003년 문경에 작업장과 전시장, 판매장까지 갖춘 유기촌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그의 장인 혼은 현재 아들이 잇고 있고, 대구 팔공산의 방짜유기박물관에서 그의 작품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문경 고도현 기자

◆전통자수 명장 김시인 선생

규방문화 세계 전파…대영박물관 영구 소장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김시인(67) 선생은 드물게 전통자수의 명장이다. 전통자수를 통해 사라진 규방문화를 복원하는데 평생을 바치고 있다.

그녀의 전통자수 최고 명장 수식어에는 어머니의 숨길 수 없는 '재능'이 주춧돌이었다. 그녀의 외가는 고려 말 대성리학자인 목은 이색의 후손가로 엄한 가풍과 규방문화를 그 생명으로 여겼다고 한다. 선생은 문경으로 시집와 어머니로부터 전수 받은 '육골침'을 통해 사라져가는 자수기법을 복원하는 등 5대째 전통자수의 명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함께 그녀의 또 다른 스승은 우리나라 전통 자수계의 거장인 김계순 선생이다. 1966년 김계순 선생을 만나면서 그녀는 스승으로부터 한 올 한 올 자수의 생명인 바늘과 실에 대한 정수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특히 스승 만의 특수기법인 침선에 자수를 접목시키는 비법을 완벽하게 전수 받아 자수기예 중 가장 어렵다는 열쇠패 재현에 온 힘을 쏟아 열쇄패 재현의 최고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그녀의 전통자수는 국내가 비좁을 정도. 이제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사절단으로 아시아와 유럽, 미주 등지에서 수차례 전시회를 열어 한국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고, 특히 작가의 사후에나 전시될 수 있다는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그녀의 작품이 영구 소장될 만큼 예술적인 가치도 높이 평가 받고 있다.

수년 전에는 몽골 울란바토르대학을 찾아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자수박물관을 열기도 했다. 문경시 문경유교문화관에 가면 김 자수장의 작품을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문경 고도현 기자

◆으뜸 술에 붙던 '춘'…유일하게 남은 '호산춘'

황희 정승 집성촌 종부 500여년 전승

문경 산북면에 가면 우리나라 전통명주 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호산춘(湖山春)을 만날 수 있다. 호산춘은 조선 세종 때 황희 정승의 증손 황정이 산북에 집성촌을 이뤄 살면서부터 종부에 의해 500여 년간 전승돼온 가양주(家釀酒)다.

호산춘의 명인은 종부 권숙자 선생으로 1991년부터 경북지정 무형문화재였으나 지난 2012년 향년 82세로 별세해 지금은 아들 황규욱(65'한국서예협회 경북지회장) 씨의 부인 송일지(63) 씨가 기능을 전수해 문화재가 됐다.

우리나라 문헌에선 한산춘, 약산춘, 호산춘, 벽향춘 등 '춘(春)' 자가 들어가는 술을 최고급으로 여겨왔다. 우리나라에는 서울의 약산춘, 평양의 벽향춘, 전라도의 백화춘, 한산춘 등의 명주가 있었으나 현재 술 이름에 춘 자가 들어가는 전통주는 문경의 '호산춘'이 유일해 '춘주'(春酒)의 대명사로 꼽힌다.

호산춘의 원료는 멥쌀과 최상품의 찹쌀, 밀을 갈아 껍질을 제거한 곡자, 솔잎 햇순의 속잎, 종택의 샘물 등이다. 호산춘은 담황색을 띠며 솔잎이 첨가돼 부드러우면서도 솔향 그윽한 맛을 낸다. 쌀 1되에 술 1되를 생산하며 발효주임에도 알코올 농도 18%고 뒤끝이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문경 호산춘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똑같은 원료와 방법으로 술을 빚어도 산북면 대상리 이외의 장소에서 술을 빚으면 제맛을 내지 못한다는 것. 반드시 대하마을에서 나는 물을 자정에서 새벽 4시 사이에 길러와 끓이고 식혀서 술을 빚어야 제맛을 낼 수 있다고 한다. 호산춘에 우리 조상의 정성이 얼마나 절실히 담겨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문경시는 '호산춘'을 지역 대표 전통주로 특성화하기 위해 10억원(국비 5억, 시비 2억, 자부담 3억원)을 들여 최신 제조시스템을 갖춘 생산공장 신축에 나섰다.

문경 고도현 기자

◆경북무형문화재 한지장 김삼식 선생

옛 방식 고집 60년…조선왕조실록 복간에 쓰여

40여 년 전 문경에는 한지공장이 20곳 이상이나 됐지만 한지 역시 현대화의 물결 속에 '추억의 공간'을 차지한 지 오래다. 이러한 세파 속에서도 '우리 것'을 올곧게 지켜온 이가 있다. 문경 최후의 한지장, 경북 무형문화재 한지장, 세계가 인정하는 한지 명인 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가진 김삼식(71)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예부터 동양 최고의 종이는 '고려지'였다. 천년을 견디는 고려지를 재현하는 한지장의 공방에는 영국, 프랑스 등 세계적인 박물관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장인의 한지는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한국 관련 공예품 전시회에서 국내외 예술가들로부터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장인의 작품이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모으는 이유는 뭘까. 장인의 공방에는 '우리 것' '전통' '토종' 이외에는 출입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 장인은 60년 이상을 오로지 옛 방식대로 한지를 만들고 있다. 그의 한지는 국보인 조선왕조실록 복간에 쓰일 정도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록 밀랍본 복간을 위해 전국의 한지를 찾은 끝에 천년을 버틴다는 그의 '작품'을 실록 복간 한지로 선정한 것이다.

그의 작업장은 삼식지소(三植之所)다. 진실, 양심, 전통을 마음에 심어야 최고의 한지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담겨 있다. 그의 한지 제작에는 오직 토종만 통한다. 한지의 질을 좌우하는 닥나무는 우리나라 토종 참닥만 쓰고 있고, 이도 직접 재배하고 있다.

한지 제작 과정인 백피 역시 화학약품이나 양잿물이 아닌, 메밀대와 콩대 등을 이용해 만든 천연재만을 고집한다. 지금 장인의 곁에는 든든한 후계자가 함께한다.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는 것. 천연염색지 등 다양한 한지 개발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지체험교육 등으로 장인의 '우리 것' 정신을 널리 알리고 있다.

문경 고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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