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꿈

요즘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 중인 '비정상회담'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비정상회담은 중국, 일본은 물론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터키, 가나 등 다양한 국적의 남성들이 출연해 한국 청년들이 직면한 현실 문제를 토론하는 새로운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토론은 100% 한국어로 진행된다. 토론에서 '응용과학'과 같은 고급 어휘를 구사하는 것은 기본이고, "터키에는 말이죠. 이런 속담이 있어요"라며 자국의 속담을 한국어로 번역해 논리적 근거로 댈 만큼 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먼저 출연자들의 출중한 외모다. 이렇게 한국말 잘하고, 재밌고, 잘생긴 외국인들을 찾아낸 제작진들의 섭외력이 놀라울 뿐이다. 두 번째는 의미 있는 토론 주제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미녀들의 수다'가 한국에서 겪는 문화 차이 정도를 다뤘다면, 비정상회담은 '집에서 독립하는 시기' '혼전 동거' '7년째 사법시험만 준비했는데 계속 떨어지는 남자'처럼 한국 청년들의 현실적인 고민을 안건에 올리고, 각 국가의 사례를 들어 재치있는 입담으로 풀어낸다. 이 중 가장 공감이 됐던 안건은 '꿈'이었다.

청춘은 종종 꿈과 현실의 간극 사이에서 고민한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신문사에 입사하기 전, 약 1년간의 백수 생활은 10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대학 졸업식에서 아버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당장 백수가 된 딸을 격려했지만 '자발적 실업자'라는 신분 탓인지 자꾸 주눅이 들었다. 대기업에 취업한 대학 동기가 산 밥을 얻어먹을 때면 마음 한편이 착잡했고, "다음엔 내가 살게"라고 말하면서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힘들었다. 어디라도 취업해 돈을 벌고 싶었을 때, 마음을 다잡은 곳은 여행지였다. 라오스에서 만난 한국인 여대생들은 당시 유혈 사태로 국제 뉴스에 연일 등장했던 중국 우루무치에서 겪었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내가 뉴스로만 접했던 '현장'에 있었던 그들의 이야기를 듣자 질투가 났고, 기자가 안 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람마다 인생의 시간표가 다르고, 꿈도 다르다. 1년간 백수 생활을 통해 얻은 교훈은 내 인생의 기준을 '외부'에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남들 사는 대로 똑같이 살아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순간이 있었고, 그 고민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지난주 취재를 하며 다양한 꿈을 꾸는 한국 청년들을 만났다. 잘 다니던 대학에 자퇴서를 낸 뒤 '다들 안된다'고 한 곳에 커피숍을 차린 20대 사장님도 있었고, 볼리비아에서 축구 심판의 꿈을 이룬 청년도, 파라과이에서 2년간 컴퓨터를 가르치며 새 꿈을 찾은 여대생도 있었다. 최근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가 늦은 밤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아마 술을 한잔 한 모양이었다. 친구는 내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사람을 잘 골랐구나, 친구야. 그래,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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