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풍류산하] 몽골의 별밤

몽골의 밤은 깊어야 어두워진다. 캄캄해지기가 싫은지 밤 아홉 시가 되어도 어두워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자정이 넘어 하늘을 쳐다보니 주먹만 한 별들 사이로 미리내가 흐르고 있었다. 어릴 적 멍석 위에 누워 어머니 무릎을 베고 쳐다보던 바로 그 여름 하늘이었다.

감격은 상상을 부추긴다. 알퐁스 도데의 '별'이란 소설에 나오는 주인집 아가씨를 사랑하는 목동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몽골의 별 속에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란 시가 도데의 별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는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북간도에서 지은 이 시는 이곳 몽골과 가까워 정말 정감이 간다. 시인의 별에 대한 간절함이 오늘 밤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는 나에게로 전이되어 뭔가 모를 애절함과 그리움에 빠져든다.

몽골의 하늘은 별이 장식해야 밤을 더욱 밤이게 한다. 달과 별이 없는 회색 하늘을 노래한 시인이 있었던가. 달은 서쪽 하늘로 걸음을 재촉하는 초승달이 제격이며, 혼자 떨어져 외로움에 떨고 있는 별이 글의 소재가 된다.

"황량한 초원을 조랑말을 타고 건너리/ 허리에는 말린 말고기 한 줌 차고/ 너무 지쳐 돌아올 길 아예/ 잃어버릴는지도 모르지./ 어떠랴, 누우면 하늘을 가득 메우고/ 내 온몸을 따뜻이 감싸주는 수많은 별이 있는데.(중략)/ 어깨에는 물병 하나 삐딱하게 메고/ 바람 부는 초원을 조랑말에 업혀 건너리."(신경림의 시 '조랑말-몽골에서' 중에서)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한 이는 서양의 코페르니쿠스(1543년)와 갈릴레오(1632년)가 있다. 그러나 조선조 세종 때 이순지(1418년)가 월식현상을 보고 '지구는 둥글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한 것이 그들보다 백 년을 앞선다. 그러나 몽골 초원의 구릉 중에서 제일 높은 오름에 올라서면 지구의 둥근 모양을 하나님이 파아란 하늘 테두리 액자에 넣어 창세기 때부터 전시 중인 것을 볼 수 있다.

그 오름에서 하늘을 쳐다보면 뭉게구름을 장식처럼 두른 푸른 하늘이 둥글게 퍼져 있다. 몽골은 하늘도, 달도, 별도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크다. 연전에 '하늘 만평 사뒀더니'란 산문집을 낸 시인이 있었다. 그는 한국의 값비싼 하늘을 산 모양인데 이곳 몽골 것을 샀더라면 공짜에 수만 개의 별을 덤으로 얻었을 텐데. 부동산 투기도 앞차를 타면 손해 볼 때도 있는가 보네.

몽골 도착 첫날, 우리 일행은 방갈로식 게르에서 세 시간쯤 잤는데도 영육(靈肉) 모두가 개운했다. 공기가 맑은 때문이라 했다. 이틀째는 이정표 없는 초원을 시속 30㎞ 속도로 170㎞를 달려야 다음 숙소에 도달할 수 있다. 초원에서 보이는 건 오로지 지평선뿐이다. 멀리 유목민 한 세대가 게르 옆에서 양과 염소를 몰고 있는 목가적 풍경이 움직이는 단 한 편의 동영상이다.

초원이라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우기 때 물구덩이 속으로 바퀴가 빠지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우리 앞서 온 팀들은 차량 두 대가 늪에 빠져 20시간 동안 추위에 떨다가 겨우 구조됐다고 한다. 우리도 몇 번이나 포기하려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미끄러운 수렁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시편 23편에 나오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구절이 절로 흥얼거려졌다.

오늘의 고생을 우리는 염소요리로 보상받았다. 독한 빼갈 한 잔을 입에 털어 넣고 간과 등심을 썰어 날 것으로 그냥 씹어보니 이건 천국의 요리이지 초원의 음식은 이미 아니었다. '날렵하게 아름답다'는 말이 음식 맛 표현으론 어떨지 모르지만 정말 미칠 만큼 맛있었다.

"별 보러 가자"고 누가 소리를 질렀다. 약간의 취기를 앞세워 한달음에 언덕 위로 올라가니 하늘에는 별 잔치가 한창이었다. 국자처럼 생긴 북두칠성이 연신 별 먼지(star dust)를 퍼내는지 은하수는 달의 강(moon river)이 되어 남으로 흘러간다. 김광섭의 '저녁에'란 시가 내 입술 밖으로 별 가루처럼 쏟아진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몽골의 별 밤이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구활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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