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국내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문경 출신 김성달 의병장 등 경북 출신 5명을 포함해 28명에게 106년 만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들은 1907~1909년에 50~400여 명의 의병대를 조직해 지리산, 가야산, 태백산맥에서 일제에 맞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일제의 '남한 대토벌작전' 때 체포돼 학살되거나 전사 순국한 것으로 밝혀져 15일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이번에 건국훈장을 추서 받은 항일의병장은 모두 28명으로 이 중 김성달 의병장을 비롯해 김용출(화안 출신), 김직현(영천), 박인시(고령), 김성칠(봉화) 등 경북 출신 5명도 포함됐다.
김성달(金聖達'1880~1907'경북 문경군 신동면 노목) 의병장과 김용출(金用出'1882~1907'경북 화안군 달미면 광동리) 의병장은 각각 경북 일원에서 의병 60여 명을 조직'지휘하며 일본군에 맞서 수차례 격전을 벌이다 1907년 9월 일본군에 체포돼 총살됐다.
김직현(金直玄'1875~1907'경북 영천시 자양면 용화리) 의병장은 경주 출신 이모(李某) 의병장과 함께 1907년 초부터 영천, 청송을 중심으로 의병 100여 명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싸우다 그해 12월 영천 신촌면 하란동 부근에서 군수물자를 수송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된 뒤 순국했다.
또 박인시(朴仁是'?~1908'경북 고령군 명곡) 의병장은 1907년부터 경북 고령과 경남 거창 일대에서 의병 150여 명을 지휘하다 1908년 8월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체포된 뒤 총살됐다. 김성칠(金成七'?~1907'경북 봉화군 황엽령) 의병장은 봉화군 일대에서 채모(蔡某) 의병장과 의병 200여 명을 이끌었고, 1907년 12월 일본군 수비대와 교전을 벌이다 붙잡혀 총살됐다.
이번 건국훈장 추서는 향토사학자인 정재상 경남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의 노력으로 맺은 결실이다. 정 위원장은 올 2월 토지주택 박물관과 국가기록원에서 항일의병장 등 259명의 문건을 찾아 의병장 41명의 공적서를 작성, 정부에 서훈을 신청(본지 2월 25일 자 8면 보도)했고, 이 중 28명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항일의병들은 온몸으로 일제에 저항하며 목숨을 바친 분"이라며 "이번 훈장 추서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항일독립운동가들의 민족애와 나라 사랑 정신의 숭고한 뜻이 후세에 계속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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