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자동차 부품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정모 사장은 지난 연말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유동자금 부족으로 추가대출을 받아야 했지만 은행문턱이 너무 높았다. 시중은행들은 영업실적 순손실과 부채비율 과다를 이유로 부동산 및 연대보증 등 확실한 담보를 요구했다.
정 대표는 "그런 담보가 있었다면 굳이 은행까지 갈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정 사장에게 10년 넘게 거래를 해 온 대구은행 이모 차장이 찾아왔다. 늘 그랬듯이 '소주나 한 잔 하자'고 시작한 자리에서 정 대표는 염치불구하고 자신의 고민을 털어놨다. 정 사장의 성실함과 기업의 기술력 그리고 업계에서의 호평까지 잘 알고 있던 이 차장은 비재무적 경쟁력을 근거로 추가대출을 결정했다. 위기를 넘긴 정 대표는 지금도 가끔 이 차장과 막창에 소주를 즐긴다.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권의 '보신(保身)주의' 영업행태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는 가운데 대구은행이 그동안 공들여 온 '관계형금융'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어 주목된다.
관계형금융은 은행이 중소기업과 지속적인 거래·접촉·관찰·현장방문을 통해 얻은 기술능력 및 업계 평판 등을 토대로 대출은 물론 지분투자·재무·회계 등 경영상담까지 지원하는 것을 뜻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금융 규제를 아무리 많이 풀어도 보신주의가 해소되지 않으면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며 "(대출과정에서 기업에 대한)평가·감독체계도 창조경제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이 담보 및 보증 대출 등 안전한 영업활동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이나 성장잠재력을 평가해 대출에 활용해 달라고 주문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7일 여의도 정책금융공사에서 열린 기술금융 활성화를 위한 정책간담회에서 "여전히 기술력만으로는 금융지원을 받기 힘들다"며 "담보·보증·우수기업 중심에서 기술중심으로 금융기관이 실물경제 지원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관계형금융을 독려했다. 한발 더 나아가 금융감독원은 신용등급 9~11등급(15등급 기준) 중소기업과 시중은행이 협약을 맺고 대출, 지분투자, 경영컨설팅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요구를 소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대출창구직원 한 명이 백여개의 중소기업을 담당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관계형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덩치는 크지만 전국을 영업대상으로 하고 있어 '관계형금융'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대구은행의 모범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이종욱 금융감독원 특수은행검사국장은 "대구은행은 지역 내 촘촘한 영업망을 바탕으로 명실공히 관계형금융을 실천하고 있는 모범은행"이라며 "저금리 장기화, 대기업 대출부실 등 은행권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구은행이 건실한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선진금융기법인 관계형금융을 그동안 꾸준히 실천해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대구은행은 대출금의 70%를 기업에 지원하고 있으며 기업 지원 대출금 가운데 90%가 중소기업을 돕고 있다.
대구은행은 지난 2011년부터 매년 7월 9일-29일까지를 DGB친구데이(Day)로 지정해 지역 중소기업과 직원 사이의 친밀감을 높이고 있다. 심지어 중소기업 대표입장에서는 어렵기만한 은행장이 '아이스께끼' 통을 직접 매고 기업현장을 방문해 직원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선물하기도 했다.
박인규 행장은 "대구은행의 성장 동력은 지역민의 사랑과 성원이었다"며 "받은 사랑을 토대로 단순한 재무적 관계 이상의 지원과 성원을 돌려드리는 것 그것이 대구은행의 끈끈한 관계형 금융의 참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광준기자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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