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아세안과 한국, 그리고 동아시아의 미래

1967년 방콕선언을 통해 동남아국가들의 연합체로 출범한 아세안(ASEAN)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개발도상국들의 협력 모델로 발전함으로써 동아시아의 국제정치'경제 관계에 있어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게다가 내년에 출범하는 인구 6억 명, 국내총생산(GDP) 2조 달러의 거대한 '아세안공동체'는 국제사회에서 동남아지역의 중요성을 더욱 제고시키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최초의 공식적 다자안보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창설하여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세안+3(한국'중국'일본)과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주도하면서 동아시아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려가고 있다.

특히 한국에 있어서 아세안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협력동반자인데, 경제적으로는 교역'투자'건설 수주 분야에서 중국 다음으로 제2의 무역 파트너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한류(韓流)의 진원지로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제1의 해외여행지이다. 안보적으로는 말라카해협과 같은 동남아의 주요 해로(海路)가 인도양으로 나아가는 길목에 있어서 우리 경제의 생명선(life line)일 뿐만 아니라, 매년 아세안의 주도로 개최되고 있는 ARF 회의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협력안보의 유용한 메커니즘이 되고 있다.

또한 외교적 차원에서도 아세안은 '동아시아 평화 구축의 동반자이자 중견국(middle power) 연대의 파트너'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으로 인하여 미'중 패권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양 강대국이 동남아지역에서는 아세안을, 그리고 동북아지역에서는 한국을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상대방의 견제에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아세안이 추구하고 있는 '헤징'(hedging)과 '균형'(balance) 전략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아세안은 중국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동시에 군사협력으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주권 손상이나 미국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과의 협력관계도 유지함으로써 어느 일방에게서 오는 위험을 상쇄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아세안은 외교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제로섬(zero sum) 게임적 선택을 피하고자 하며, 전략적 균형감을 잃지 않고 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물론 한국의 안보상황이 아세안의 그것과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주어진 외교 환경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강대국의 패권경쟁에서 인질이 되지 않고 국익을 극대화하려는 아세안의 전략은 유사한 상황에서 외교적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외교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며, 한'미 동맹과 함께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 오늘의 당면과제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과 아세안은 미'중 패권경쟁을 완화하고 동아시아 평화를 구축하기 위하여 '중견국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양측은 식민 지배를 받은 쓰라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강대국의 패권경쟁으로 인하여 적지 않은 압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아세안의 전략적 연대는 그 의의가 매우 크다. 특히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기약할 수 있는 '동아시아공동체'의 건설은 분단의 고통을 겪고 있는 한국이 그 최대의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공동체 추진을 위한 한'아세안 협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물론 동아시아공동체의 건설이 아직은 이 지역의 학자나 정치지도자들의 담론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평화와 번영의 동아시아로 나가고자 하는 양측의 건설적인 연대는 그 실현을 앞당겨 주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올해 12월 양측의 대화 관계 수립 25주년을 기념하여 부산에서 개최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담'은 그러한 전략적 연대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좋은 기회로 활용되어야 한다.

변창구/대가대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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