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고난 새겨진 '천주교 요람'…경북의 성지

한국 천주교 초기 박해사는 경북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박해를 피해 전국에서 피난 온 천주교 신자들을 품어준 곳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천주교 박해인 신해박해(1791)부터 마지막 박해이자 가장 많은 신자가 순교한 병인박해(1866) 전후로, 수많은 신자들의 삶과 신앙이 경북 곳곳에서 이어졌다.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시복되는 한국의 순교자 124위 중 대구대교구 순교자 20위와 안동교구 순교자 1위의 고난스럽지만 숭고했던 삶과 신앙도 경북 곳곳에 서려 있다. 그들이 형성했던 교우촌의 흔적은 이제 성지로 거듭나 순례객들을 맞고 있다.

◆경북 곳곳에 천주교 박해 피하려 모인 교우촌 흔적

칠곡은 대구와 가까워 큰 교우촌이 여럿 있었다. 한티성지와 신나무골이 대표적이다. 한티성지는 임진왜란(1592) 전후로 신자들이 하나 둘 모여든 오래된 교우촌이었다. 신자들은 낮에는 생계를 연명하고, 밤에는 성사를 보러 다녔다. 이곳은 국내에서 무명 순교자가 가장 많이 묻혀 있는 곳이다. 특히 병인박해 때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고, 마을은 불태워졌다.

신나무골은 한티성지 근처에 있다. 신유박해(1801) 이후 서울'경기'충청'전라 등 전국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와서 정착했다. 대구와 가까운 이곳은 선교사들의 선교 전초기지이기도 했다. 대구대교구 첫 본당 터도 신나무골에 있다.

문경과 상주는 경북 경계에 있어 다른 지역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가장 먼저 다다르는 곳이었다. 문경 여우목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제2주보인 이윤일 요한 성인이 살다 병인박해 때 붙잡힌 곳이다. 문경 마원성지'한실'진안리도 교우촌이다. 영남의 출입구였던 문경새재의 관문 옆 수구문(물을 흘려보내는 문)은 선교사와 신자들이 몰래 선교와 피난을 위해 오가던 통로였다.

상주 청리면 삼괴리에는 한국 교회 유일의 신앙 고백비가 있다. 상주에도 멍에목'앵무동 등 교우촌이 있었다. 상주에는 목사(지방관)가 있었기 때문에 많은 신자들이 상주의 관아에서 고문을 받거나 옥사 및 참수를 당했다.

봉화'청송'영양은 은신하기 좋은 험준한 산골짜기가 많아 신자들이 모여든 곳이다. 봉화 우련전'곧은정'곰직이와 청송 노래산, 영양 진보 머루산 등에 교우촌이 있었다. 또 봉화에는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첫 수덕자(신앙을 위해 독신으로 산 가톨릭 평신도) 홍유한의 신앙생활 흔적을 담은 우곡성지가 있다.

많은 교우촌이 대구 북쪽, 서쪽에 있었던 것과 달리 경주 진목정은 경북 동부 지역에 있었던, 빼놓을 수 없는 교우촌이다.

◆청송 노래산, 순교 복자 7위 배출한 교우촌

16일 시복되는 대구대교구 순교자 20위 중 10위는 관덕정(을해박해 7위, 정해박해 3위), 7위는 경상감영 옥사(을해박해 4위, 정해박해 3위), 3위는 병인박해 때 울산 장대벌 군문에서 순교했다. 안동교구 순교자인 박상근 마티아는 병인박해 때 상주 옥사에서 순교했다. 모두 경북 곳곳 교우촌에 살다가 관아나 군대가 있는 대구, 울산, 상주로 잡혀가 처형되거나 옥사했다.

출신지별로 교우촌을 살펴보면 청송 노래산이 가장 많은 7위를 배출했다. 고성대 베드로와 고성운 요셉 형제'김화춘 야고보'구성열 바르바라'서석봉 안드레아'최봉한 프란치스코'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다. 다음으로 경주 진목정에 이양등 베드로'김종륜 루가'허인백 야고보 등 3위가 살았다.

이어 상주 멍에목에 박사익 안드레아와 박경화 바오로 등 2위가, 상주 앵무동에 김사건 안드레아와 안군심 리카르도 등 2위가, 영양 진보 머루산에 김시우 알레시오와 이시임 안나 등 2위가 각각 거주했다. 또 봉화 우련전에 김종한 안드레아, 봉화 곧은정에 김희성 프란치스코, 봉화 곰직이에 이재행 안드레아, 안동에 김세박 암브로시오, 문경 마원성지에 박상근 마티아 등 각 1위가 살았다.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관덕정순교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