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통스럽지만 내면에 새기듯… '볼펜 화가' 김성룡 초대전

수만 번 그어야 작품 완성, 현실 폭력성 강렬하게 표현

김성룡 작
김성룡 작 '소녀'
'회오리바람'
'스핑크스'

볼펜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작가 김성룡 초대전이 9월 21일(일)까지 갤러리청담에서 열리고 있다.

김성룡은 국내외에서 주목받는 작가다. 그는 구글이 세계 유수 미술관과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을 온라인으로 손쉽게 볼 수 있도록 마련한 구글아트프로젝트에 소개됐다. 또 그의 작품 '청산에 눕다'는 인문계 고등학교 교과서(시공사 발행)에도 수록됐다.

김 작가가 주목받는 이유는 독특한 작품 세계 때문이다. 그는 한국 현대미술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1980년대 역사의 현실성에 토착신화의 상상력을 결합한 마술적 리얼리즘을 실험한 그는 2000년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적인 리얼리즘 미학을 구축했다.

작품 세계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방법도 독특하다. 그는 주로 볼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볼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많은 노동과 인내를 요구한다. 연필과 달리 볼펜은 잘못 그은 선을 지울 수 없어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보통 그림 한 점을 그리는 데 한 달가량 소요된다고 하니 노동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작가는 볼펜의 노동이 주는 고통을 즐기고 있다. 그는 "수만 번을 그어야 그림이 완성되지만 뼈를 심는 것처럼 단단하게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드는 재미가 있어 볼펜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볼펜으로 대상을 치밀하게 묘사한 그의 작품은 그림이 주는 일반적인 정서와 사뭇 동떨어져 있다. 그림을 통해 즐겁고 아름다운 미적 감흥을 느끼려는 관람객들은 여지없이 그의 작품 앞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정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담배를 물고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남성, 신체 일부가 기계화되어 있는 인물상은 낯설다 못해 섬뜩하고 괴기스럽다. 이는 김 작가가 인간의 모습을 빌려 인간의 내면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강한 폭력성이 엿보인다. 잠재의식 속에 묻어 두어야 할 폭력성을 공공연하게 불러내는 그의 그림은 존재를 송두리째 거부할 만큼 강력하다. 김 작가가 한국 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 작가는 현실이 비현실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마에 'DMZ'라는 낙인이 찍혀 있는 소녀는 그의 작품 경향을 잘 보여준다. 김 작가는 "우리에게는 환영처럼 분단 이데올로기가 박혀 있다. 그림이 기괴해 보이지만 현실은 소설이나 그림보다 더 병리학적이고 초현실적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작가는 시대의 폭력성에 당당히 맞설 것을 제안하다. 그는 정글 같은 잔인한 세상을 건너는 방법으로 폭력에 호응하거나 침묵하는 대신 폭력에 저항하라고 말한다. 인간이 역사에 저지른 폭력성을 고발하는 그의 작품에는 아이러니하게 '흰 그늘'이 서려 있다. 모순 형용인 '흰 그늘'은 죽음과 공포에서 벗어나 환희와 빛의 세계로 나아가야 된다는 당위성을 담고 있다. '흰 그늘'은 부조리한 현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극복하려는 작가의 세계 인식을 드러내는 장치인 셈이다. 054)371-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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