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 음지를 비추다…경북 영화관 1곳도 없는 시군 15곳

문화가 차고 넘치는 시대, 하지만 이런 말이 사치처럼 여겨지는 곳도 많다

어느덧 한류 문화 콘텐츠는 자동차, 휴대전화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주요 수출품이 됐고 "집에서 놀다가 슬리퍼를 신고 영화관에 간다"고 할 정도로 멀티플렉스 영화관은 도심뿐만 아니라 주거지역까지 들어서고 있다. 정부에서도 '문화융성위원회'를 만들 정도로 문화 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야말로 '문화'가 차고 넘치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문화를 즐긴다'는 이 문장이 사치로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문화 시설'장비의 부족과 문화를 즐길 금전적'시간적 여유의 부족 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문화생활에서 멀어진, 이른바 '문화 소외'를 겪고 있는 것이다.

대구경북지역도 문화 소외를 겪는 지역이 많다. 이들을 위해 많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문화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지자체와 민간단체도 꽤 많고, 일정 부분 성과를 내기도 한다.

◆문화 소외, 수치로 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3 지역문화지표 지수화를 통한 비교분석'을 보면 대구경북지역의 문화 소외 양상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도서관, 박물관 등 문화 기반시설 개수는 인구 10만 명당 전국 평균이 7.89개로 조사됐는데, 대구는 3.19개, 경북은 12.01개로 나타났다. 면적당 문화 기반시설 개수는 전국 평균 0.12개였으며 대구는 0.271개, 경북은 0.011개로 나타났다. 이는 한마디로 대구는 인구가 많음에도 문화시설의 수가 부족해 소외 현상을 겪고 있고, 경북은 문화 기반시설이 군데군데 몰려 있어 문화 소외를 겪는 지역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에서는 매주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해 각종 영화, 스포츠, 공연, 전시 등의 관람료를 할인해 주거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문화가 있는 날' 홈페이지에 따르면 대구는 21곳, 경북은 34곳이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고 있다. 그중 대구 남구와 경북의 6개 시'군은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는 업체가 한 군데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의 경우 참여 업체도 문화재나 문화시설이 많은 포항과 안동이 6곳으로 제일 많았고 나머지 시'군은 1, 2곳 정도에 불과하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 따르면 영화관이 없는 기초자치단체는 2013년 12월 31일 현재 대구는 2곳, 경북은 16곳에 이른다. 그나마 가장 저렴하게 즐기는 문화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조차도 일부 기초자치단체는 시외버스를 타고 몇 시간을 오간 뒤에야 볼 수 있는 것이다.

◆대구 "하드웨어는 완벽", 경북 "찾아가는 문화예술"

대구시와 경북도도 문화적으로 소외받는 지역을 위한 갖가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 모두 문화시설이 부족한 지역에서 음악회를 여는 이른바 '찾아가는 음악회'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대구시의 경우 대구지역 예술인단체의 협조와 지원을 통해 공단지역이나 문화시설이 부족한 지역 등을 찾아가 공연을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 경북도 '작은음악회' '종가음악회' '고택음악회' 등 경북의 오지마을이나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들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여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다. 경북도의 관계자는 "경북 지역이 워낙 넓다 보니 문화 시설을 모두 설치해 주기는 곤란하다. 그래서 도립예술단 등을 이용해 '찾아가는 문화예술 공연'을 많이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보유하고 있는 공연장과 미술관 등 시설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문화 소외 극복 정책을 짜고 있다. 대구시는 남구 대덕문화전당과 북구 문화예술회관에 '생활문화 전용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곳에 주민들의 예술 동호회 또는 아마추어 예술 동호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연습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또한 아양아트센터 시설 노후화 개선 사업에 시 예산 5억4천만원을 투자하는 등 대구지역 각 구'군에 있는 문예회관 등을 최대한 활용할 계획이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 대구 오페라축제에서는 티켓 가격이 부담돼 오페라를 접하기 어려운 저소득 계층을 위해 최종 리허설 과정을 공개하는 이벤트도 계획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는 1천 석 이상의 대공연장이 서울 다음으로 많은 곳이고 시설의 질적 측면에서는 예술인들도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며 "이미 잘 만들어진 시설에 대해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부분 또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게 보는 투자가 필요하다

문화 소외를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투자와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는 기초자치단체마다 사정이 달라서다. 일부 지자체 경우 예산과 인구 증감 문제에 부딪혀 쉽게 시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경북도는 '작은 영화관'을 만든 영덕군처럼 타 시'군에도 문화 부문에 대한 예산 책정을 독려하고 있지만 고령화와 인구 감소, 그리고 재정자립도 문제가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경북도 관계자는 "군 단위 기초단체의 경우 고령 인구가 많다 보니 실제 문화생활 수요층이 적고 재정자립도도 낮은 탓에 예산 책정 시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전보다 문화시설이 분명히 많이 늘어났음에도 문화 소외와 불균형이 지속되는 것은 장기적 안목의 투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한때 기초단체가 문화시설을 건립하는 데 열중이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 공연 수요 부족 등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 시설의 활용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각 지자체에서 문화 소외 지역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유행처럼 설립하고 있는 작은도서관도 장기적 안목의 투자와 관리가 없다면 결국 예산 낭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구 서구의회에 작은도서관 설립'지원조례를 발의했던 장태수 서구의회 의원은 "대부분 문화 소외를 없애기 위해 문화시설을 늘리고 재정을 많이 투입하는 방식을 생각하는데 그보다는 작은 공간이라도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정책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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