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에 주류 사상은 주자학이었다. 과거시험의 표준이 사서(四書)였기 때문이다. 사서는 주희가 주해(해석)를 붙인 '사서집주'가 대표 교재였다. 주희는 그에 들어가는 입문서로 보완 교재인 북송 시대 4명 선배학자의 성리학설을 모아 '근사록'을 편찬했다.
명나라에 와서도 여전히 과거 제도 때문에 선비들이 주자학 교리를 절대화하고, 거기에만 매달렸다. 종교의 폐단이 나타난 것이다. 이때 독서와 이론에만 치우친 학문 경향을 반성하고, 유교의 본래 이념인 나의 인격 수양과 치국평천하의 사회 참여를 일치시키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동시에 유교를 사대부만의 학문이 아닌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활에 지혜를 주는 학문 혹은 신앙으로 일반화, 즉 해방시키려는 시대 흐름과도 호흡을 같이 했다. 일종의 종교 개혁, 주자학 개혁이 이루어졌다.
주자는 '대학' 속의 '격물치지'라는 문구를 자기 학문의 모토로 내걸었다. 이것은 유교 도덕적 실천에는 마음이나 양심도 중요하지만, 객관적인 사물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책을 통한 간접적인 지식 포함)도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그가 근사록에서 우주를 설명한 '태극도설'을 맨 앞에 둔 것도 이 우주(자연)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없으면 인간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데서 나왔다. 과학과 인문학, 철학과 종교의 융합인 셈이다. 이 학설 때문에 유교가 예법학(禮法學)이 아닌 성리학(性理學)이라는 철학으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제도 때문에 그 폐단 또한 적지 않았다.
그래서 왕양명(1472~1528)이 '지행합일', 즉 도덕에서 아는 것과 실행은 일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바탕에는 왕양명의 기본 사상이 놓여 있는데, 그것이 심즉리(心卽理)와 치양지(致良知) 학설이다. 도덕에서 지행합일이 되려면 나의 마음의 본 바탕 그대로 발휘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마음의 본바탕이 순수하고 선해야 하는데, 마음은 우리가 기교를 부려 조작해서는 안 되므로 맹자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은 착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된다. 이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적 믿음이다. 이 믿음이 도덕적 실행을 추동한다. '양지'는 '양심'과 같지만, 왕양명은 이를 중요시한 나머지 나중에는 절대화하여 우주의 본체로 끌어올리고, 이 마음이 없으면 객관적인 사물 인식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불교의 유식론(唯識論)처럼 유심론(唯心論)의 성격을 지녔다.
이 책은 왕양명이 제자들과 문답한 어록이다. '전습'은 '논어'에 있는 증자의 말에서 따왔다. 사상서이어서 일반인이 읽기에는 어렵다. 조선조에서는 주자학 때문에 이단시되었다. 하곡 정제두가 양명학자이고, 그가 만년에 강학을 한 강화도가 연고지가 됐다.
이동희 계명대 윤리학과 교수 dhl333@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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