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시인(詩人) 이장을 꿈꾸다

어느 모임에서나 본인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보시다시피 제 코는 의성 육쪽마늘 코이며 마음은 심심산골의 옹달샘입니다. 희망사항은 시인 이장이 되어보는 것입니다"라고 고향을 빗대어 토종적으로 소개를 하고 나면 주위에선 폭소가 터지곤 한다.

태어난 땅의 본질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인지, 이 몸의 근성 또한 마늘처럼 맵차고 알싸하다는 걸 이제 스르르 그만 인정하고 싶어진다. 안치환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렀다시피 내 고향 오지마을의 중심인 사람, 마음씨 좋은 마을 이장 자랑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바로, 봉사와 헌신, 나눔과 덕을 겸비한 사람을 이르러 붙여진 가사일 것이다.

날씨가 꾸덕꾸덕해지는 겨울철에는 홀로 사는 노인분들이 가장 먼저 추위를 느낀다. 어느 도시, 어느 시골엔들 외롭고 고독한 노인이 없겠느냐만, 우리 고향 마을에는 이러한 노인을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한 이장만의 비책이 있어 참으로 믿음이 가고 든든하다. 해질 무렵 마을 가장 높은 곳 언덕에 올라 저녁연기가 나지 않는 집을 샅샅이 살피는 것이다. 물이라도 끓이고 밥이라도 지으면 굴뚝에선 연기가 정직하게 피어오른다는 것을 알고 일일이 찾아 나설 수 없을 바에는 그렇게 굴뚝으로 연기를 치솟게 하고 있다. 물론 땔감도 해주면서 말이다.

저녁 여섯시만 되면 속암리 마을 이장은/ 네잎클로버의 꿈이 하얗게 핀/ 예배당이 묵상중인 언덕에 올라/ 죽마고우인 달과 함께 마을을 두루 살피고 있다/ 연기가 나지 않는 굴뚝이 몇 개인지/ 어느 고독이 혹, 외로움이 번진 냉방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지,/ 그러다가 가죽나무 홀로 사는 집에서 연기가 치솟지 않을 때엔/ 불꽃이 툭, 꺼졌나 싶어/ 삼십 년 지기 삼천리 자전차와 한통속이 되어 달려간다/ 중략. 졸시-저녁연기를 살피다

하긴 우리 고향 마을뿐 아니라, 조치원 신안 마을에는 아무개 교수 이장 인기가 그야말로 '짱'이란다. 이러한 훌륭한 이장들의 현장의 소리를 들을 때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우리 동네에 필자 역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시인 이장으로 한번 출마해 보고 싶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마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중략. 조동화 시-나 하나 꽃 피어

참 편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지친 심신에 따뜻한 에너지를 보내온다. 상대가 바뀌기를 갈망하기 전에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꾸고 싶어진다. 요즈음 좋은 시 한 편을 낭송하면서 아침을 열어간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세상이 좋은 쪽으로 아름답게 바뀌려면 대단한 사회운동가가 아닌, 네가 아닌 바로, 나의 실천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박숙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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