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남이(가명'52) 씨는 8월 초부터 아무리 날씨가 덥고 비가 내려도 하루 세 번 병원으로 향했다. 자전거를 타고 2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관절염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갔다. 병원에는 뇌경색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윤 씨의 오빠가 입원해있기 때문이다. 윤 씨가 돌보는 사람은 오빠뿐이 아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심각한 우울증으로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남동생도 윤 씨의 어깨에 기대고 있다.
"어디 기댈 곳도 하나 없이 가족들을 다 돌보려니 너무 막막해요. 하나뿐인 아들의 인생에 짐을 지워주기 싫어 혼자 헤쳐나가려고 했는데 너무 버거워서…."
◆힘겨웠던 어린 시절
윤 씨의 가족은 항상 불행했다. 윤 씨의 아버지는 군대 생활 중에 심각한 폭행을 당해 고막파열 등 몸이 만신창이가 된 채 어머니를 만났다. 남편의 얼굴도 모르고 결혼한 어머니는 남편 대신 자식들을 돌보느라 식당일, 가정부, 포장마차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아프셔서 대신 어머니가 일을 하다 보니 어머니까지 몸이 성치 않으셨죠. 당뇨, 고혈압, 관절염까지 앓으면서도 자식들을 생각하는 마음만큼 누구 못지않았죠."
윤 씨가 20대 중반이 될 무렵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돌아가시고 가족들은 각자 생활을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떨어져 살다가 10년 만에 돌아온 집은 전보다 더 엉망진창이 돼 있었다. 오빠는 돈을 벌기 위해 배를 타러 나가 집을 비웠고, 어머니는 가난에 시달리다 삶을 비관해 알코올 중독자가 돼 있었다. 남동생도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가족을 돌볼 사람은 윤 씨뿐이었다. 당시 윤 씨는 혼자서 갓 돌이 지난 아들을 키우고 있었다.
"아들 하나 키우기도 버거웠는데 어머니와 남동생까지 돌봐야 하느라 앞이 막막했어요. 그래도 그때는 젊고 일할 능력이 있어 힘들어도 버텼죠."
◆홀로 지내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오빠
오빠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 살면서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윤 씨에게 돈을 빌려 장사를 하려고 두어 번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주변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해 시작도 못했다. 실패를 거듭한 오빠는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알코올 중독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해 어머니가 쓰러지면서 오빠도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술을 끊었고, 열심히 살겠다며 일용직 일을 매일 알아보며 살아갔다. 항상 삶이 순조롭지 않았던 윤 씨였지만, 다음 해면 아들이 군대에서 돌아오고 오빠도 정신을 차리고 살려고 노력하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이달 초 오빠가 쓰러지면서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일거리를 찾아 경남 진주에서 잠시 생활하던 오빠가 지내던 여관방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진 채 발견됐다. 3일이나 지난 뒤에 발견돼 오빠의 상태는 심각했다. 수술비만 1천만원이라는 얘기에 윤 씨는 병원에서 오빠를 데리고 나왔다. 하지만 죽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에 서둘러 수술을 진행했다.
"당장 돈 몇천원도 없는 처지에 천만원이 어디서 나겠어요. 수술비뿐 아니라 병원비까지 다하면 도저히 우리 가족이 감당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어요."
◆아픈 가족들 때문에 아들에게 고개 숙인 엄마
윤 씨는 오빠가 수술받은 후 매일 병원, 주민센터, 구청 등을 몇 번이나 오간다. 바싹 마른 몸에 베체트병 때문에 심각한 관절염까지 앓고 있지만 버스비를 아끼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병원에는 수술 이후 반신을 쓸 수 없게 된 오빠가 있고, 집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있다. 수술비와 입원비를 낼 돈이 없어 주민센터와 구청도 계속해서 찾아간다. 우울증으로 바깥에 나오지 않는 남동생의 집에도 반찬을 만들어주고 청소를 해주러 한 번씩 들러야 한다.
"무슨 힘으로 다니나 싶어 나도 놀라죠. 그래도 우리 가족들한테는 나뿐인데 어쩌겠어요."
힘든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윤 씨이지만 아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지난달 제대한 아들은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자동차 정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윤 씨가 아픈 몸을 이끌고 가족들을 돌보는 것도 아들에게 이 짐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다.
"내가 힘들어도 가족들을 돌봐야 아들이 그나마 힘들지 않죠. 그런데 병원비 부담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 나도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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