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대구의 여름날도 하루 이틀쯤은 '가장 보통의 대구'가 아닐 때가 있다. 이따금 상쾌한 산들바람이 분다. 가령 태풍이 지나갈 때 주는 선물이다. 그런 날 우연히 이 앨범을 들었다. 모던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5집, 가장 보통의 존재(2008)다.
앨범은 '습'(濕'젖을 습)의 욕망으로 출발한다. 1번 트랙 '가장 보통의 존재'는 습지를 배회하는 듯한 낮게 깔린 기타 소리로 출발한다. 곡은 뒤로 갈수록 침전한다. 급기야 드럼의 하이햇이 물에 '풍덩' 빠진 듯 진동한다. 마치 선배 록 뮤지션 한대수의 '물 좀 주소'(1974)에 빙의 된 것처럼. 앨범은 물 그 자체가 되려는 듯 습도 100%로 향한다. 언니네 이발관 특유의 우울하고 조금 아픈 정서가 물의 몸을 빌려 듣는 이의 귀에 젖어든다.
이런 질감을 만들기 위해 언니네 이발관의 초반부터 함께 호흡을 맞춰온 레코딩 엔지니어 김대성이 크게 기여했다. 또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은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해놓고도 원하는 소리를 내기 위해 수개월 동안 앨범 재작업을 하며 발매를 연기했다. 김대성과 언니네 이발관은 이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다.
그런데 습의 욕망을 갈구하던 앨범은 끝 곡에서 아름다운 '제습'(除濕)을 선택한다. 욕망을 비우며 듣는 이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끝 곡 제목은 '산들산들'이다.
사실 이 앨범은 400년 전 지구로 온 외계 미남 도민준(김수현 분)의 로맨스를 다뤄 최근 인기를 얻은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원조격이다. 첫 곡에서 '당신을 애처로이 떠나보내고, 그대의 별에선 연락이 온 지 너무 오래되었지'라며 고향별에 있는 그리운 님과의 교신 두절에 상심한다.
7번 트랙 '100년 동안의 진심'은 지구에서 보낸 100년 삶에 대한 소회로 들린다. 노랫말은 이렇다. '오월의 향기인 줄만 알았는데, 넌 시월의 그리움이었어. 슬픈 이야기로 남아, 돌아갈 수 없게 되었네.'
이석원은 이 앨범을 발매하고 1년 후 산문집 '보통의 존재'(2009)를 펴낸다. 읽고 나면, 이 앨범은 결국 한 평범한 지구인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8번 트랙 '인생은 금물'의 노랫말은 이렇다. '언젠가 우리, 별이 되어 사라지겠죠. 모두의 맘이 아파올걸 나는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걸.'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습의 욕망을 비워내는 마지막 곡 산들산들의 노랫말은 이렇게 끝이 난다.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많은 세월 살아왔지만,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서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삶에서 특별하다 여기며 집착하던 것들을 비워내면, 그곳에는 보통의 소중함이 자리하는 게 아닐까. 앨범의 정서는 우울하고 조금 아프지만, 밴드의 연주는 제법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지금을 사는 보통의 존재들의 삶을 수식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문법이 바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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