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한참 전의 이야기다. 체셔가 두어 살이던 무렵, 우리 집엔 체셔만이 아니라 금붕어들도 함께 살고 있었다. 금붕어는 사촌동생이 돌보다가 외가에 두고 간 녀석들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집으로 이사 오게 된 것이었다. 체셔는 처음 본 어항에 꽤 많은 관심을 보였다.
어항 속 물 흐르는 소리가 신기했는지, 아니면 작지만 끊임없이 살랑대며 움직이는 물고기가 녀석의 주 관심사였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보다 조금 더 큰 네모난 어항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앞뒤 좌우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면서 어항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아침마다 물고기에게 밥을 주기 위해 어항의 위쪽 뚜껑을 연다는 점을 알게 된 뒤부터는 그 시간에 맞춰 쪼르르 달려와 어항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어항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물론 물을 좋아하지 않는 고양이니만큼 물 안까지 머리를 넣진 않았고 그냥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물 안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듯했다.
체셔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어항 뚜껑을 좀 더 오래 열어 놓자, 망설이며 안을 들여다보던 체셔는 순간적으로 어항 속으로 발을 집어넣었다. 아마도 뽀글거리며 올라오는 공기방울을 잡고 싶었거나, 아니면 움직이는 금붕어를 잡아보겠단 생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주춤거리며 집어넣은 체셔의 앞발은 공기방울을 잡지도, 금붕어를 건드리지도 못했다.
되레 자신만 차가운 물의 감촉에 깜짝 놀라 젖은 발을 탈탈 털어냈다. 그러나 그 한 번의 놀람으로는 부족했는지 그 이후로도 체셔는 물끄러미 어항 속을 들여다보다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에 푹 빠져서는 몇 차례씩 발을 집어넣었다가 잽싸게 다시 물을 털어내는 행동을 반복하곤 했다.
이런 어항 속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움직이는-특히나 굴러가는 것들이라면 더욱 더- 모든 것들에 체셔와 앨리샤의 온 신경이 집중되곤 한다. 책상 위에서 펜이 떨어진다거나, 도마 위에서 채소를 썰다가 떨어져서 또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나면, 어느 순간 녀석들은 떨어진 물체 바로 옆에 와서 앉아 있다. 가끔은 떨어진 물건을 굴리면서 한껏 신나게 뜀박질도 하면서 말이다.
또 어느 날엔 축구 시청을 하고 있는데, 하얀 털 뭉치가 텔레비전 앞에 불쑥 나타나더니 그곳에 자신의 엉덩이를 깔고 앉아서는 화면을 보던 내 시야를 가려버렸다. 바로 체셔였다. 체셔는 그곳에 자리를 잡더니 더 이상 움직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고개만 좌우로 돌려댔다. 그 고갯짓을 따라 화면을 바라보니 좌우로 화면을 가르며 날아다니는 축구공이 보였다. 한동안 묵묵히 앉아서 축구공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체셔는 끝내 자신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공을 향해 앞발을 내밀어 텔레비전 화면을 공격하다가 그 즉시 우리에게 제지당하고 쫓겨났다.
이렇게 체셔는 텔레비전 속 움직이는 피사체에도 종종 관심을 보였다. 물론 모든 움직임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고 축구공과 같이 화면 속에서 순간적으로 '쏜살처럼' 지나가는 물체에 한정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아마도 우리가 보는 관점과는 다르기 때문인지, 인간들이 그저 별것 아닌 것처럼 지나쳐버리는 움직임들이 체셔나 앨리샤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상황들이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녀석들은 집 밖에서 날아다니는 새나 잠자리들을 보면 안절부절못하며 가만히 있질 못한다. 아무래도 움직이는 것들에 대해 참지 못하는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태어나도록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럴 때의 까만 눈동자와 살랑거리며 움직이는 꼬리 끝 부분, 그리고 실룩거리는 엉덩이는 내 눈엔 언제나 그저 귀엽기만 할 뿐이지만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신세계병원 덕담
"하루 32톤 사용"…윤 전 대통령 관저 수돗물 논란, 진실은?
'이재명 선거법' 전원합의체, 이례적 속도에…민주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