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고산족 순례-몽족의 무속(3)

아이들 닭 머리 잘라 피 받고…굿 마친 집에선 꽹과리 소리 계속 울려

◆전통의 끝자락을 힘겹게 붙잡고

중간 중간 멈춰 서서 끝없이 접신을 시도하는 아잔. 아이들도 어른들도 피가 선명하게 묻은 긴 칼을 들고 왔다갔다하니 풍경은 살벌하기만 하다. 아잔 뒤로 다시 가족이 모이고, 아잔 부인이 꽹과리를 머리 위로 추어올리더니 그 주위를 한 바퀴 빙 돈다. 누군가 뒤에 커다란 돌멩이를 하나 갖다놓고 부적을 태우고, 옆에서 아잔의 시중을 들던 사람도 물을 머금어 허공에 내뿜는다.

밖에서는 조그만 돼지를 뜨거운 솥에 담갔다 꺼내더니 손잡이가 짧고 옴팍한 수저로 털을 벗긴다. 삼거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32세의 학교 선생이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집 앞을 지나간다. 이 산속에서 그런 옷차림은 처음 보는데 그는 종교가 다르기라도 할까, 마을 행사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지 산속 조그만 마을, 서로 한 집 건너 친척간인데, 조상을 섬기는 그들의 오랜 전통이 무디어져 가는 것은 아닐까. 문득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흘러가는 물처럼 인간의 의식도 문화도 변해 갈 것이며, 문명화의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이다. 흘러온 시간이 그걸 증명했고 미래의 시간 또한 그러하리라.

2시간 15분 동안 그렇게 요동을 치는데도, 아잔의 동작은 처음과 똑같다. 온몸은 땀으로 흥건하게 젖었다. 바깥으로 나온 아잔이 다시 촌부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과 음료수를 마시며 웃는데, 앞니가 몇 개 빠져 있다. 부인의 눈빛은 아직도 형형하다. 수돗가에는 여전히 10대 아이들이 모여 큰 칼로 스스럼없이 또 닭들의 머리를 자르고 피를 받는다. 특별한 놀거리가 없는 산마을, 마을 사람도 많이 모이고 고기와 음료수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사내 아이들에게는 오늘이 즐거운 축제일인 듯하다. 청년들이 바깥쪽 집 담에 기대어 우리와 비슷한 장기 같은 것을 두기 시작한다.

◆굿 풍경 2

오후에는 바로 위에 사는 작은아버지 집에서도 굿을 한다고 한다. 여기서 서너 시간 거리 떨어진 '빤 웅 마을'에 사는 아잔이 한 번씩 오기가 힘드니 몰아서 하는 듯하다. 그 집에 올라가 보니 벌써 마당 한쪽 가마솥에는 물이 설설 끓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점심을 먹으러 와 있다. 잠시 후 부엌 땅바닥에 포장이 깔리고, 사람들이 그 위에 앉아 맥주를 반주 삼아 점심을 먹더니 들일이 바쁘기라도 한듯 급하게들 돌아간다.

옆에서 아기를 안고 있던 솜털이 보송보송한 소녀가 스스럼없이 뽀얀 젖을 내더니 아기에게 먹인다. 그녀도 아까 아랫집에서 보았던 소녀처럼 16세란다. 아이가 아기를 안은 모습이 먼 조선 시대쯤 유물이 된 화석을 보는 듯하다. 이국의 사내 앞에서 부끄러운 생각이라도 들었을까. 소녀가 슬그머니 젖을 여미며 몸을 돌린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소녀는 그새 우리네 아이들처럼 동네 가게에서 조그만 소시지를 사서 먹고 오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개구쟁이 모습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나 중학교 1학년 때쯤 사내를 만나 살아온 세월, 얼마나 먹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많을까. 그런 나이에 서툰 결혼을 하는 아이들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득한 생각이 몰려온다.

이 집 역시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굿을 한다. 앞의 제단이나 음식들은 조금 더 협소하고 가족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아잔에게 큰절을 드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아잔이 하고 가면 그 집 안주인이 아잔과 똑같이 9일을 채운다고 한다.

◆몽족 마을 삼거리 풍경

오늘 마을 학교에서 무슨 행사가 있나 보다, 오전부터 인근 마을 깔리양 아낙들이 제법 붐빈다. 삼거리에 단 세 개뿐인 슈퍼로 아낙들이 연신 들어가더니 저마다 한 개에 5바트(200원)씩 하는 과자들을 두어 개씩 골라 나온다. 처마 밑 슬레이트를 잇대어 만든 아래로 탁자가 세 개 있고 그 위로는 설탕, 식초, 고춧가루, 토마토케첩을 닮은 붉은 양념이 한 세트씩 놓여 있다. 잠시 후 점심을 먹기 위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온다. 아빠도 막 들일을 끝내고 와 오토바이를 세우고 처마 아래로 들어오고 세 식구가 둘러앉아 20바트짜리 국수 세 개를 시킨다. 우리의 청양 고추보다 열 배쯤은 더 매울 듯한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거기에 빨간 양념과 장까지 넣더니, 노란 설탕도 세 숟가락을 그득 담아 넣는다. 이어 엄마는 비닐에 싸온 시커먼 보리가 섞인 밥을 내놓는다. 오전 내 허기진 아이는 커다랗게 밥 덩어리를 떼어 국수에 넣는다.

◆몽족 마을을 떠나며

5시가 넘어가자 일을 끝내고 온 마을 청년들이 하나 둘 학교로 공을 차러 간다. 각종 미디어들이 들어오고 있는 이 오지 산마을에도 축구는 인기다.

어제 굿을 마친 집에서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어두컴컴한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검정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엄마가 의자에 앉아 힘차게 흔들고 있다. 어제 본 아잔과 비슷한 풍경이다. 그 뒤에서 아들 둘도 같은 강약으로 꽹과리를 연신 두드린다. 얼마나 오래 하려는 것인지 한참을 앉아 있어도 끝날 줄 모르고 두 아들 이마에는 땀이 맺힌다.

밤이 되자 약간 쌀쌀해져 오는 산마을, 한정 없이 밤이 깊어가는데도 살라(정자)에 모인 동네 청년들은 돌아갈 줄 모른다. 오늘 밤은 달빛도 좋아 오래오래 머무르려는 것일까, 찡쯩리가 집 곁에 패둔 장작을 가져와 불을 피운다. 키가 작은 몽족 중에서도 유난히 작은 26세의 히야. 그는 열세 살에 우리나라 초등학교 5학년쯤인 12세 아이와 결혼하였다고 한다. 그 후 17, 25세에 다시 결혼을 했으며 지금 6, 8, 9세 된 아이들이 세 명 있다고 한다. 서로 임의로워지니 이런저런 마을의 속사정들이 나온다.

살라 옆에 유난히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밤늦게까지 아이들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집이 있다. 이 집에는 마을에서 비교적 돈을 잘 번다는 50대 후반쯤의 사내가 살고 있다. 사람을 보면 별로 살갑게 대하지 않는 그는 부인이 세 명이라고 한다. 첫 부인은 아이가 4명이며 근처에 따로 살고, 둘째는 아이가 5명인데 이 집 안집에서 살고, 셋째는 마당 입구에 있는 2층짜리 나무집에 사는데 아이가 3명이라고 하니, 도합 12명이다. 한 마당 안에 두 집이 사는데 서로 싸우지나 않을까, 적이 걱정스러운 것은 낯선 풍습에서 온 이방인만의 생각일까.

윤재훈(오지여행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