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나의 북한산 등정 실패기

휴가를 갔다 왔지만 방랑벽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광복절을 낀 주말에 서울로 향했다. 서울로 향하면서 이번에 내심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일 하나를 감행하기로 했다. 바로 북한산 산행이었다.

하루라도 더 빨리 오르고 싶어서 광복절 전날 KTX 막차로 서울에 가서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북한산으로 향했다. 산으로 향하면서도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은 있었다. "북한산이 팔공산보다 해발 고도는 낮아도 쉬운 산이 절대 아니다"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가끔 봄이나 가을 등산 철에 TV 뉴스에서 북한산에서 조난당하거나 산행 중 부상을 입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자주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으로 미리 찾아본 북한산 등산로의 정보도 "정상 부근에서 난이도가 올라가니 부상에 유의하라"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다. 근처 주민 분들이 "별로 안 어려워요"라며 날 안심시키긴 했지만 그래도 왠지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등산로 초입은 평이했다. 너무 만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려움' 코스에 도달해도 길을 가로막은 바위를 하나둘씩 넘어가다 보니 '오, 이 정도 실력이면 올가을 지리산 종주에 도전해도 되겠는데'라며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자만하고 있었다. 드디어 '매우 어려움'으로 표시된 코스였던 백운대 암문~백운대 정상 코스에 이르자 난 눈앞이 캄캄해졌다. 갑자기 바위로만 된 등산로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파른 길이었다. 몇 년 전 전남 해남 두륜산에서 암릉 길에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그리고 조금만 올라가면 정상이 저긴데, 저기서 서울 시내를 바라보면 경치가 죽여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한 발을 내디뎠다. 옆에 있는 와이어로프에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올라갔지만 도저히 발 디딜 공간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조금만 발을 떼어도 주르륵 미끄러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머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내가 발을 디딜 등산로는 점점 좁아지고 사람들은 그 좁은 길로 우르르 몰려들었으며 나는 발 디딜 곳을 찾지 못해 어쩔 줄 몰라했다. 결국 등산로 한쪽에 비켜서서 백운대 정상 약 몇 백m를 남겨두고 10분간 고민했다. 내 결론은 결국 하산이었다.

길을 내려올 때는 와이어로프를 잡고 스틱으로 지지점을 찍으면서 잘 내려왔기에 '올라갈 때는 왜 못그랬을까'하는 후회가 몰려들었다. 내려오면서 '내가 왜 거기까지 가지 못했을까' 하는 일종의 '패인 분석'을 해 봤다. 생각해보니 결국에는 내 다리와 신발과 스틱과 손의 힘을 믿지 못한 게 컸다. 사실 북한산이 높고 미끄러운 바위산이라도 나 자신을 믿고 간다면 못 오를 산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려움이 나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자 북한산 백운대는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은 산이 돼 버렸다.

비록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북한산에 도전할 생각이다. 에베레스트가 아직 거기에 있듯 북한산도 어디 가지 않을 게 분명하고, 한 번 실패해봤으니 다음에는 실패한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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