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日, 위안부 징발 영장…日人교사가 여학생 지원 독려"

1945년 안동초교 졸업생들 당시 일제만행 증언

일제(日帝)가 어린 초교 졸업생들을 위안부 등으로 데려가기 위해 교사들까지 동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때문에 당시 학교에서 일어난 일제의 만행을 규명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증거 채집 조사활동을 새롭게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희숙(87'안동 동부동) 씨 등 안동초교 33회 졸업생(1945년)들은 최근 광복 69주년을 맞아 19일 동창회 모임을 갖고 당시 일제가 안동지역에서 저지른 초교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위안부 징발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털어놨다.

모두 80대 후반에 접어든 한 씨 등 이 학교 졸업생들의 기억을 모아보면 당시 일본인 담임 여교사였던 다도코로 기쿠에(당시 나이 27세)가 졸업 예정인 여학생들을 상대로 "여자 정신대에 가면 군수공장에서 일할 수 있어 큰 돈을 벌 수가 있다"고 한 뒤 "천황의 군대를 뒷바라지할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잡으라"고 꼬드겼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총독부가 지휘하는 일선 행정조직인 안동읍은 미혼여성일 경우 만 15세만 돼도 빠짐없이 군대 정신대 영장을 발부했을 정도로 제2차 세계대전 말기까지 '숫처녀'들을 전쟁터로 내몰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고 한 씨 등은 당시 암울했던 상황을 증언했다. 이 때문에 당시 안동지역에서는 위안부 징발을 피하기 위해 15, 16세만 돼도 조기에 결혼을 시키는 등 때아닌 조혼 풍습이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도 동창생 중 2명은 결국 여자정신대에 끌려갔고 이후 지금까지 영영 소식이 끊겼다고 한 씨 등은 전했다.

졸업생들은 또 한인 미혼여성들과는 달리 당시 안동에 거주하던 일본인 여학생과 미혼여성에 대한 위안부 강제징집 통지서 발부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하면서 일제가 비양심적인 조선인 차별 만행을 저질렀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동창회장인 한 씨는 "졸업하자마자 여자정신대 통지서가 날아와 아버지가 쌀 두 말을 읍 담당자에게 갖다주고서야 징발 대상에서 빠졌다"며 "하지만 6개월이 멀다 하고 계속 통지서가 날아와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하게 됐다"고 했다.

한 씨는 "1945년 봄에 결혼했는데 약 5개월 뒤 안동읍내 태사묘 앞 길거리에서 부녀자들 수십 명이 태극기를 들고 '우리 조선 찾았네, 우리 조선 찾았네'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일제가 망한 것을 알았다. 소식이 없는 동창생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진다. 교사까지 동원한 일제의 만행은 반드시 규명돼 규탄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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