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의리, 의리, 의리!

대학만 가면 고생 끝이야, 팔자가 펴, 참고 공부해라.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성격에 맞는 대학이 아닌, 성적에 맞는 대학을 다닌다. 속았나 싶고 아리송하지만 틀린 말씀 아니시니…. 8월, 스무 살의 반이 넘어갔다.

먹고살려면 기술을 배워라, 처자식 굶기면 사내가 아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셨지. 공부를 더 할 걸 그랬나. 아리송했지만 지금껏 잘 버텨 온 8월, 서른 살의 반이 넘어왔다.

배운 여자 만나라, 있는 집 여자가 낫지, 부모 잘 모시는 여자가 살림도 잘 사는 법, 직장 다니는 여자여야 한다. 주변 분들 덕분에 연애도 충분히 못 하고 서둘렀지만 내 아내는 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고 시어른도 챙기고 할 건 다 한다. 주변 분들 마법의 주문이 신기하다. 우리 부부 벌써 10년, 잘 살고 있다.

저 녀석이 나보다 잘나가다니 당황스럽다. 인정하기 쉽지 않군. 내가 저 녀석보다 덜 버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러나 오늘 술값은 내가 낸다. 술값 내는 나에게 모른 척 고맙다 하니 저 녀석 참 의리 있네. 술값을 값지게 하는 거 보니 내 친구 맞다. 오늘 밤, 마흔 살을 넘어가는 우리들이 기특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내 차에 실려 바람을 가르는 일에 환호한다. 내 차는 우리 집 녀석들만 타면 스포츠카로 변신한다.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아빠 차가 제일 좋다고 엄지를 들어주다니, 살맛이 난다. 나의 의리가 대물림되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 오는 대구가 좋다. 서울 가려던 서른 즈음, 대구에 눌러앉길 잘했네. 대구 냄새가 오늘따라 진하다. 얘들아, 달려보자.

아내는 무던히도 나를 지켜준다. 밖에서 쌓인 화가 아내에게 터져도 아내는 잘도 받아준다. 곰이라고 답답해했던 철없던 내가 부끄럽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더니 아내는 진짜 곰이었나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러고 보니 주먹의 의리보다 내 아내의 묵묵한 기다림이 진정한 의리인 것 같아 의리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된다. 내가 사람이 되기를 기다려 준 아내에게 선물을 하고 싶다. 로맨틱 금요일 밤을 통째로 아내에게 주면 어떨까.

가만히 보니, 대학만 가면 다 잘 풀린다는 어머니의 속 보이는 거짓말에 속아 드린 내가 진정한 의리인이요, 처자식 굶기지 말라는 아버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내가 진정한 의리인일세. 못난 이 아비 자존심 지키느라 겨우 구르는 내 차에 스포츠카 변신 마술을 건 우리 집 녀석들이 진정한 의리인이요, 못난 이 남편 성공의 그날까지 쑥, 마늘만 먹고 사람이 된 내 아내가 진정한 의리인이니.

우리는 모두 의리인, 나는야 행복한 남자. 의리의 여름이 지나간다. 가을의 의리가 기다려진다. 의리, 의리, 의리!

조옥형 연세심리상담클리닉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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