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조선 문인들의 서글픈 자만시…『내 무덤으로 가는 이 길』

내 무덤으로 가는 이 길/임준철 역주/문학동네 펴냄

조선시대 문인들이 남긴 '자만시'(自挽詩)를 모아 우리말로 옮기고 해설한 책이다. '자만시'는 자신의 죽음을 가상하고 스스로를 애도하며 쓴 만시(輓詩)로, '내가 쓰는 나의 장송가'라고 할 수 있다.

책은 전체 5부로 구성돼 있으며, 조선 전기에 사화로 죽음의 위기에 처한 문인들이 남긴 자만시를 비롯해 현실사회의 왜소함과 자기 삶에 대한 아쉬움과 반성을 표현한 시, 상장례 과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시적 자아의 죽음을 두드러지게 표현한 시, 죽음을 먼저 떠난 혈육과 만나는 것으로 상정한 시 등을 담고 있다. 시편마다 평설을 덧붙여 이해를 돕는다.

연산군의 학정이 극에 달했을 때, 갑자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홍언충(1473∼1508)은 궁중의 일을 함부로 간했다는 죄목으로 곤장 100대를 맞고 진안으로 유배됐다. 부친 홍귀달이 왕명을 거역한 죄로 교살되고, 그 여파로 홍언충의 나머지 형제들도 모두 유배됐다. 이에 홍언충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자만시를 썼다.

'(상략) 세상에서 삼십이 년을 살고 끝마치노라. 명은 어찌 이다지도 짧은데, 뜻은 어찌 이다지도 길단 말인가. (중략) 천추만세에, 누가 이 들판 지나가려나. 손가락질하고 서성대며, 반드시 서글퍼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홍언충은 갑자년(1504년)에 이 시를 지었고, 4년 뒤인 1508년 죽었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자신의 초상화에 대해 스스로 쓴 찬문 '자사진찬'(自寫眞贊)에서 자신을 낮추면서도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고고한 은거자의 자부심을 드러낸다.

'이하를 내려다볼 정도니, 해동에선 대적할 자 없으리. 소문 자자한 이름과 부질없는 명예, 너에게 무엇이 걸맞으랴? 네 모습은 지극히 미세하고, 네 말은 너무나 유치하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는, 의당 은거할 산과 골짜기이리.'

기묘사화로 함경도 온성에 유배갔다가, 신사무옥으로 죽음을 맞이한 기준(1492∼1521)의 시에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이 드러난다.

'해 떨어진 하늘은 먹물 뿌린 듯하고, 깊은 산골짝은 구름 깔린 것 같구나. 임금과 신하 천년의 뜻이, 서글퍼라 외로운 무덤 하나로 남았네.'

이 짧은 자만시에는 죽음의 정경, 살아온 날들에 대한 묘사가 없다. 워낙 죽음의 위협이 눈앞에 닥쳐왔기에 '공유할 수 없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외로움'을 토로하고, 비탄해 할 뿐 어떤 수사도 없다. 자신의 죽음을 관조하고 대상화하려는 자만시의 특징 역시 드러나지 않는다. 진실로 죽음이 눈앞에 닥친 때문일 것이다. 이 시를 쓴 기준은 결국 유배지에서 교살되었다.

이 시는 짐짓 건조해 보인다. 그러나 수많은 사연과 언어를 다지고 다져서 짜낸 몇 방울의 언어가 시어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임금과 신하 천년의 뜻이, 서글퍼라 외로운 무덤 하나로 남았네'라는 시구는 대단히 함축적이고 단단하다. 이 단단한 노래를 물에 불려 풀면 두꺼운 책 한권이 넘을 것 같다.

이 책은 '자만시에 대하여'라는 해설에도 상당 부분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지은이는 '자만시를 쓸 때 시인은 자신의 죽음을 가정하고 죽은 자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살아온 삶을 조명하는 한편 결연한 자의식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따라서 자만시는 매우 의도적이고 허구적인 자기표현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407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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