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조(60) 경산시장은 시골 '촌놈'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임에도 부모의 높은 교육열로 공부를 계속, 행정고시(23회)에 합격한 뒤 31년 동안 공직생활을 했다, 정년을 3년 6개월 앞두고 명예퇴직한 이후 경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 당선된 이후 재선에 성공했다.
경산 남산면 평기리에서 4남1녀 중 셋째로 태어나 성남초등학교, 자인중, 대구상고, 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자취를 하면서 열심히 노력해 대학 4학년 때인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수습 사무관을 거쳐 1981년 경상북도공무원교육원에서 사무관(5급)으로 공무원을 시작, 경북도내 부단체장과 경북도지방공무원교육원장, 도의회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2011년 12월 명예퇴직을 했다.
2012년 12월 치러진 경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 차점자와 726표 차이로 당선됐고 지난 6'4 지방동시선거에서는 63.8%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집안 모범을 보이신 8촌 형님
최 시장은 양천 최씨 문중 8촌 형님인 최병현(81) 한국자유총연맹 경산시지부 고문을 인생의 멘토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경산 남산면 출신으로, 최 시장은 평기리이고 이곳에서 산 하나를 넘으면 최 고문의 고향인 안심리가 있다.
최 고문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이달 중순 꼿꼿한 기풍에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최 시장을 만났다.
"형님 무더위에 어떻게 지내십니까, 건강 좋으시고요." 최 시장이 안부를 물었다. 최 고문이 "내야 잘 지내지 뭐. 내가 자네에게 별로 해 준 것이 없는데 나를 인생의 멘토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미안하고 부끄럽네. 고맙기도 하고".
최 시장이 말을 이어갔다. "형님과는 실제 19살 차이(최 시장은 주민등록상 1955년생이지만 실제는 1954년생) 나니 어렸을 때에는 쉽게 접근할 수 없었어요. 어릴 때나 학창시절. 사회생활을 할 때 집안의 제사나 묘사 벌초 등 대소사 때 가끔 만났지만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대학까지 졸업하고 항상 성실하고 정직하게 열심히 생활하셨기에 본을 보고 늘 따르고 싶은 롤 모델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높은 교육열로 공부한 복 받은 사람들
두 사람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로 돌아갔다. 두 사람은 같은 문중 집안 사이로 남산면 평기리와 안심리에 20여 가구 정도의 일가친척이 살고 있다. 농촌 출신으로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도 부모님들의 높은 교육열 때문에 그 당시로는 드물게 대학을 졸업해 교사와 지방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한 공통점이 있다.
최 고문은 남산초교, 자인중, 경산고, 경북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교사로 15년간 봉직하면서 교감으로 퇴직했다. 그는 "자인중학교 다닐 때 할머니께서 콩밭 중간에 열무를 심어 놓고 장날 뽑아 내가 지게에다 지고 자인장에 가면 할머니가 다 팔고 하교할 때까지 나를 기다렸다가 같이 오고 그랬지. 또 공병장교로 있던 형님 덕분에 촌에서 대학까지 마칠 수 있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최 고문은 퇴직 이후 민방위'예비군 교육 강사를 하다가 자유총연맹 경산시지부장, 경산축협 감사, 경산재향군인회 감사, 신협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요즘도 노인대학에 다니면서도 특강을 하는 등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으며, 경산에서 대외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최 시장도 맞장구를 쳤다. 부모님이 평기리에서 논밭 세 마지기를 가지고 입에 풀질하고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켰다. 지금은 폐교된 성남초등학교 졸업생 34명 중 중학교 진학은 남학생 10명만 했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20리 정도를 걸어서 자인중학교를 다닌 까까머리 최 시장은 졸업 후 빨리 취업을 할 수 있는 대구상고로 진학했다.
"가난한 살림살이 탓에 아버지는 하루에 7번 정도 지게를 지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 자인장에 내다 팔았고, 어머니는 새벽 닭이 울 때까지 길쌈을 해 자식들을 키우고 공부시킬 정도로 교육열이 대단하셨어요. 저는 부모님 잘 만나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복 받은 사람입니다. 특히 외가 쪽 식구들이 교육열이 대단해 어머니가 그 영향을 받으셨고 자연히 우리 형제들에게도 교육을 시키셨죠."
◆행정고시 통해 관료로 공직생활
대구상고로 진학한 최 시장은 대구에서 자취하면서 공부를 계속했고, '뭔가 모르게 바람이 들어' 취업 대신 1973년 영남대 행정학과에 들어갔다. 새로운 인생이 펼쳐지는 서막이 된 것이다.
부모님이 열심히 사신 덕분에 집안 살림살이가 좀 펴졌다고는 하나 농촌에서 대학을 보낸다는 것은 버거운 일.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고향에 가 가뭄으로 타들어 가던 논에 물을 푸다가 혼자 생각에 비싼 등록금 걱정을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해군 자원입대. 35개월 군 생활 중 틈틈이 영어 단어를 외우고, 사회 나가면 적어도 장교 같은 생활을 해야 하겠다는 다짐이 오늘날 최 시장 자신을 있게 한 계기가 됐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복학한 그는 자신에게 채찍을 했다. 복학생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취해도 자췻집에 오면 술을 깨우고 공부했다. 대학 2학년 때 무심코 행정고시를 봤는데 거의 커트라인에 육박할 정도로 잘 쳤다. 3학년 때 1차 시험에, 4학년 때 2차 시험에 합격했다.
1981년 경북도청에서 5급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최 시장은 31년간 경북도에서만 공직생활을 했다. 봉화부군수, 영주'구미 부시장, 문화관광체육국장. 경북도지방공무원교육원장을 거쳐 2011년 3월 지방이사관으로 승진한 후 2011년 12월 명예퇴직을 했다.
그는 평소 온화하고 후덕한 성품의 외유내강형으로, 공직생활 중 상대의견을 존중하고 화합과 결속을 통해 공무원들이 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왔다. 동료 및 후배 공무원들의 평이 그래서 좋다.
◆보궐선거 당선과 재선 성공
최 시장은 2012년 12월 경산시장 보궐선거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 당시 보궐선거에는 새누리당 무공천 방침에 따라 6명의 후보가 출마해 열띤 경쟁을 펼쳤다. 다른 5명 후보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면서 지명도나 재력 등 어느 정도 기반이 다져진 사람들이었고, 최 시장은 오랜 공직생활을 했다고는 하나 경산시민들 사이에서는 무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최 고문은 "경산시장 보궐선거 당시 최 후보는 조직도 없고 돈도 없고 오직 가지고 있었던 것은 후덕한 마음과 고향을 사랑하는 애향심, 행정고시 출신의 화려한 이력밖에 없었다"며 "워낙 어려운 여건 속에서 힘들게 선거운동을 한 결과, 그래도 경산시민들이 위대한 선택을 해줬다. 경산시장에 당선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고 했다.
최 고문은 "추운 겨울날 제수씨가 선거운동을 한다고 내가 사는 동네를 왔을 때 '남편이 돈도 조직도 기반도 없지만 경산을 위해 본심으로 정말 열심히 일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었다"고 회상했다. 이 말을 하던 최 고문도 최 시장의 두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최 시장은 보궐선거 당선 이후 시민화합과 안정적인 시정 운영으로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다.
최 시장은 "초심을 잃지 말고 초지일관 경산시민들을 위해 일해 달라"는 최 고문의 당부에 최 시장은 "시장으로서 겸손하고 노인 장애인 다문화가족 등 힘들고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지역사회가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사랑해 시민 모두가 잘살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시정을 펼치겠다"고 화답하며 최 고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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