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말 이후 조선 유교의 계급주의와 부조리에 절망한 일부 양반과 평민들은 '천주(天主)는 만물의 주인'이라는 서학(천주교)에 빠져들었고, 2만 명이 참수되었다. 서학자들이 박해를 받던 중 1860년 퇴계학파의 유학자 후손 수운 최제우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고 득도하고 계급주의 타파를 부르짖었고, 만민평등의 후천개벽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수운은 4년 뒤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되었다. 지금 우리는 후천개벽, 즉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조선 후기의 지배층은 백성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의(義)를 향하여 몸부림쳤다.
가난한 자의 벗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 5일 동안 우리에게 감동과 위안을 안겨주고 떠났다. 그의 겸손함과 밝은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제69주년 광복절 다음 날 윤지충과 123위는 광화문 앞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하여 '복자'(福者)로 추존되었다. 그들의 신앙은 200년이 지난 후에야 정당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막대한 부와 풍요 곁에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난다"라고 물신주의를 비판했고, "정의는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했다. 죄지은 형제 7번이 아니라 77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라는 정의와 용서, 화해론을 설파했고 "마음을 열지 않는 대화는 독백일 뿐이다"라는 대화론을 말했다.
그는 스스로 'Servus 프란치스코'라고 칭했다. 'Servus'는 고대 라틴어인데, 하인(노예)을 뜻한다. 그는 하느님의 하인이 아닌 만인의 하인이라는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국민은 종교를 떠나서 그를 존경하게 되었다.
그의 철학은 사람, 즉 생명이 가장 소중하고 부와 명예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가진 자, 권력자들은 아래를 향하여 베풀어야 한다, 즉 돈과 권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서는 안 되고, 봉사(Service, 어원은 Servus임)의 도구로 사용하여야 의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는 세월호 유족, 위안부 할머니 등 우리 사회 약자들의 손을 잡고 위로해 주었다.
영화 '명량'의 관객은 2천만 명을 향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이순신 장군은 "군인에게 있어 의리(義理)는 백성을 향한 충(忠)이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왕이 있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관객은 장군의 엄숙함에 진정성을 느꼈다. 이순신 장군은 왕(선조)이 아닌 백성을 위하여 죽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백성들은 죽음의 목전에서도 장군을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천행(天幸)이 온 것일까? 우리 국민들은 이순신 장군의 의(義)에 감탄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 국민들 가슴 속의 영원한 지도자가 아니겠는가?
맹자는 '민위귀'(民爲貴)를 말했다. 군주와 권세가는 백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맹자는 "백성이 귀하고 나라는 그다음이고, 임금은 귀하지 않다"고 했다. 또 그는 인의(仁義)를 해치는 군주는 일개 사내에 불과하므로 백성들이 폐위시켜도 좋다고 생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순신 장군, 그리고 맹자는 비록 시대는 다르게 태어났지만 민(국민)이 가장 중요하고,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의(義)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처음 방한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우리 국민들은 감격적인 6'29 민주화 선언을 목격했다. 우리 국민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르쳐 준 것, 즉 부자와 권력자는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취해야 하고, 가난한 자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익히면 어떨까? 그래서 아래를 주목하고 위로는 재물이 아닌 의(義)를 세워보자. 그러면 어떤 천행이 오지 않을까?
혹시 남북통일이 된 후 프란치스코 교황이 또다시 방한하게 된다면, 그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義)에 하늘이 감동했다"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김용대 변호사'경상북도 공직자윤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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