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희 전 대구시장이 부임했던 1982년의 비화 한 토막. 이 시장이 부임하자마자 대구예술인들이 찾아왔다. 예술계 인사들은 새 시장에게 대구 도심에 예술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어달라고 간청했다. 3층 규모로 1층은 전시실, 2층은 사무실, 3층은 사랑방으로 쓰겠다고 했다. 첫 민원이었지만, 단박에 거절했다. 그렇게 되면 당장 모이기는 수월하겠지만, 대구의 저력을 펼쳐가기에는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예술가들은 골이 나서 돌아갔다.
멀어지는 예술인들의 뒷꼭지를 보며 이 시장은 똑똑한 직원에게 망원경을 들려 앞산에 올랐다. 전망대에서 대구시내를 이 잡듯이 둘러본 시장의 눈이 한 곳에 꽂혔다. 좌청룡 우백호에 배산임수를 한 멋진 터가 있었다. 그런데 그곳은 산소였다. 묘 주인을 찾아보니 한준우 대구MBC 사장이었다. 이 시장은 읍소에 들어갔다.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지을 부지가 필요한데, 이 산소 말고는 없다"며 한 사장에게 매달렸다. 한준우 사장은 "죽어서라도 선조에게 할 말은 없지만, 대구를 위해서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용서를 빌겠다"며 묘를 이장해주었다.
땅도 없이 시작된 대구문화예술회관 건립 계획은 대구의 은인 한준우 전 사장의 도움과 이상희 전 시장의 안목으로 빛을 보기 시작, 근 10년 만에 완공됐다. 이런 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정력의 핵심이다. 이상희 전 대구시장은 역대 대구시장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전국 사무관 이상 공무원들을 상대로 존경하는 시장'지사'장관을 설문조사한 결과, 이상희 전 대구시장은 건설부장관'대구시장'경북도지사 영역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후배 공무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이상희 전 시장이 오늘(25일)로 취임 56일째를 맞은 권영진 대구시장을 향해 사심 없이 큰 꿈을 품으라고 조언한다.
이 전 시장이 권유하는 첫 번째 권 시장의 꿈은 달성군을 잘 활용하는 것과 낙동강의 대구 한강화 작업이다. 한강도 처음에는 서울의 끝자락에 있었다. 하지만 88올림픽을 전후로 서울시는 뻘밭이던 잠실 개발에 나섰고, 불과 십여 년 만에 강남은 기업'인재'돈'문화'정보 등 5가지가 다 몰려드는 명당으로 발전했다. 낙동강 너머를 별천지로 만드는 신개발 작전과 기존 시가지에서 아직 푸세식 변소와 연탄을 쓰는 낙후지역을 면밀히 조사하여 재개발 기치를 올릴 필요가 있다. 부동산 경기도 살아나고, 주민 삶도 향상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대구시가 8개 구군과 손을 잡고 함께 부활 꿈을 꾸는 것이다. 최근 금복주 창업주 고(故) 김홍식 회장이 대구시에 기부한 화원유원지를 묵혀두지 않고 달성군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권을 넘긴 것은 참 잘한 결단이다. 달성군뿐 아니라 중구'남구'서구'북구'동구 등과도 연대해야 한다. 골목길투어와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개발에 성공하여 밤낮으로 대구에 관광객을 불러모으고 있는 대구 중구가 쾌적한 밤 문화(Night life), 감동이 있는 대구의 속살을 깊이 느끼는 도심재생에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어야 한다. 그 일환은 옛 구암서원 터에서 대신동 국일갈비 일대까지 스러질 듯 살아있는 수십 채 한옥을 재정비하여 관광자원화할 수 있도록 국비지원 프로젝트를 대구시와 중구가 같이 마련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구의 문화예술이 부산'광주보다 뒤떨어진 원인을 찾아내고 개선방안을 찾는 것이다. 대구가 유력인사를 등에 업은 몇몇 문화권력자의 손에 놀아나지 않도록 인적, 시스템적 쇄신도 필요하다. 또 군산 같은 중소도시에도 거창하게 마련되어 있는데, 교육문화도시를 자랑하는 대구에는 없는 대구역사박물관도 세워야 한다. 역대 시장들을 존중하되, 자칫 상왕 놀이를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권 시장은 재선할 생각을 버리고, 4년 임기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사즉생의 심정으로 시정을 펼쳐야 산다. 민선 이전 관선 대구시장의 임기는 평균 15개월에 불과했다. 4년도 짧지 않다. 재선 여부는 그다음에 노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리 공무원 엄단은 지속적으로 하되, 비리를 넘어선 꿈과 비전을 그려가야 한다. 공단 분양에 협잡은 없는지, 싼값에 공장용지를 분양받은 사람이 부동산 차익을 남기고 떠나갔는지, 제조업을 잘하고 있는지도 점검해봐야 한다. 성공한 대구시장은 칼이 백 개다. 품어 안으면서 칼같이 냉정을 기하고, 또 완전 새로운 기획으로 신선하게 다가설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선거 때처럼 표를 구하러 다니는 것은 금물이다. 대구시장의 성공 요건,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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