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강남지역과 시공사에 의존하는 부동산정책

정부의 부동산 시장 활성화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력해 보인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직후 금융규제 완화를 중심으로 한 7'24 대책을 발표한 지 겨우 한 달이 지났는데 정부는 추석 전후 발표할 또 다른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준비 중에 있다. 연일 언론에서도 주택거래량 증가나 주택매매가격 상승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활력이나 정상화라는 명분 속에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묻히고 있다.

정부가 검토 중인 대책들은 대부분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 비정상적인 투기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했던 장치들을 해체하는 것이다.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 청약제도, 보금자리 전매제한 등이 규제 완화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의 부동산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침체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재건축'재개발사업을 활성화하고 부동산 매매수요를 촉진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저성장시대, 저출산 고령화, 경기침체 상황을 고려하면 현재의 부동산 거래의 정체와 부동산 가격의 안정은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은 사회경제적 여건변화를 반영하는 거울일 뿐 부동산 시장을 통해 국가 전체의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시도는 가능하지도 않고 부작용도 크다.

최근에 거론되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특징은 정책의 혜택이 특정지역에 한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7'24 금융규제 완화 대책이나 연이은 재건축사업에 대한 규제 완화는 서울의 강남지역을 최대 수혜지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강남지역의 부동산 시장을 자극해서 전국의 부동산 시장을 살리자는 불쏘시개론을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서울의 강남지역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진원지 역할을 해왔고 최근의 강남지역 부동산 침체는 우리나라 부동산 침체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되어왔다. 부동산 시장에서 강남-신도시-지방대도시-전국으로 이어지던 부동산 가격상승의 동조화 현상이 깨져버린 현실을 고려하면 실효성이 떨어지는 시도이다.

건설경기 활성화나 부동산 가격 상승을 위해 수십 년간 쌓아왔던 행정 경험과 원칙이 너무 쉽게 훼손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재정비사업에 대한 공공관리제를 주민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공공관리제는 정비사업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구청장인 공공관리자가 정비사업의 시행 과정을 관리하고 지원하는 제도이다. 그동안 정비사업에서 폭력과 횡령 등의 범죄가 난무하고 갈등의 진원지가 되는 동안 지방자치단체가 제대로 감독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수도 없이 제기되어 왔다. 팔짱행정, 깜깜행정, 방치행정 때문에 정비사업이 혼란에 빠져 있으니 공공이 정비사업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책임행정을 실현하라는 주문이었다. 시장이나 구청장이 전문가를 파견하고 사업추진 절차를 관리하고 사업추진 자금을 융자해주는 지원행정은 당연한 조치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관리제의 자율선택제는 외형적으로는 주민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지만 실상은 공공관리제를 무력화시키는 장치다. 정비조합이 공공관리제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관리제를 둘러싼 갈등의 핵심은 공공과 시공사 중 누가 정비사업의 추진을 주도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동안 시공사가 조합운영비나 설계비 등을 지원했기 때문에 공사비 산정이나 업체 선정에서 공정하지 못할 우려가 있어서 공공관리제를 도입했다. 시공사 선정절차를 관리하고 시공사 선정시기도 공사비가 확정된 시점 이후로 연기시켰다. 이제 다시 공공부문의 역할을 시공사가 대신하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변화했는데 정부는 여전히 강남지역이 부동산 상승세를 이끌고 시공사가 주택공급을 주도하던 화려한(?) 시절을 꿈꾸고 있다. 이젠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방정부가 지역의 특성에 맞는 부동산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확대시켜줘야 한다. 재건축사업에서 소형주택의 의무화 비율이나 공공관리제는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허용해줘야 한다.

변창흠/세종대 교수·한국도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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