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제대까지 이제 3년 남았어." 친구들과 나는 '졸업'을 '제대'라고 불렀다. 여학생들만 있는 여대를 남자만 있는 군대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군인들이 제대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듯 우리도 졸업을 기다렸다. '훈남'(훈훈한 남자)이 아니라 '흔남'(흔한 남자)이라도 좋으니 직장생활을 하며 남자들과 자연스럽게 한공간에서 어울릴 수 있는 모습을 대학 시절 내내 기대했었다.
이달 21일은 제대하는 날이었다. 이상하게도 기쁘지 않았다. 떠나는 길에 남아 있는 추억들을 바라보니 마음 한구석이 떨려왔다. '이곳을 떠나서 잘 살 수 있을까?' 여자들만 있어서 더욱 따뜻했던 여대가 그리울 것 같았다. 그래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생생한 여대 생활기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여대는 특수한 곳이다. 여대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한 풍경들이 있다. 먼저 남녀 화장실 간 격차다. 여자 화장실은 번쩍번쩍하지만 남자 화장실은 두 층에 하나씩 있을 정도로 열악하다. 그것마저도 나를 포함한 많은 여학생들이 손 씻으러 들락거려 민망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여대에는 그 흔하다는 '대출'(대리출석)도 없다. 모두가 '열심히' 하기 때문에 대신 출석해 주기를 부탁하지도, 부탁을 받지도 않는다. 덕분에 수업 시간은 늘 만원이다. 날이 흐려 '오늘은 결석 좀 했겠지' 싶은 날에도 학교에 가보면 풀 메이크업을 한 학생들이 강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람들은 늘 여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여대에도 남자가 들어갈 수 있어?'라는 질문을 4년 내내 가장 많이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때그때 다르다. 평일 저녁 9시 이후와 주말에는 출입금지다. 요즘 여대에서는 남녀공학 못지않게 남학생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자매대학에서 학점 교류 온 학생, 외국인 교환학생, 동아리 활동을 하러 온 학생들까지, 꽤 많은 수의 남학생들이 여대 안을 활보하고 있다. 먼저 말을 거는 적극성을 가진다면 어느 정도 남학생들과 소통하며 학교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여대생에 대한 편견도 다양하다. '여대생들은 공부만 한다' '여대생들은 남자한테 인기가 많다' 등이 그 예다. 여대생들은 공부보다 대외활동에 더 적극적이다. 여대 안에는 즐길 거리가 비교적 적기에 연합 동아리나 외부 봉사활동에 눈이 밝다. 여대생이라고 인기가 '더' 많지는 않다. 물론 소개팅, 미팅 등을 통해 이성을 '이성 친구 상대'로 만날 기회는 많다.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소개팅을 시켜주는 일을 미덕(?)이라 여기는 분위기 덕분이다. 그러나 소개팅에 나가서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개인의 노력에 달렸다.
여대 생활은 내 인생의 보물창고였다. 특히 이른 아침 수업에도 '풀 메이크업'을 선보이는 부지런한 여대생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 역시 부지런히 살게 돼 많은 것을 얻었다. 이제 보물을 나눌 때인 것 같다. 여대에서 쌓은 '좋은 느낌'을 세상에 전하고 싶다. 그리울 것 같은, 꽃 같았던 여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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