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상담을 하다 보면, 가족의 지출욕구에 돈쓰기를 아까워하며 족쇄를 채우는 배우자를 만난다. 이들 아내들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남편은 툭하면 '전등을 꺼라' '수도꼭지를 잠가라'며 일일이 제재하는데 아니꼽고 배알이 틀려 못살겠다는 얘기다. 또 남편은 모처럼 휴가를 가서도 가족은 넷인데 아이스크림은 두 개를 산단다. 간에 기별도 가지 않게 나눠 먹게 하고선 몇천원 벌었다고 기뻐하는 꼴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어쩌다 아내의 새 옷을 보면 여자가 손 크고 돈 무서운 줄 모른다며 흥분하는 모습에 숨이 턱턱 막힌다. 그쯤 되면 아내들은 '남자가 적은 돈에 궁상떨지 말고 더 벌어오면 될 것 아니냐'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조밀조밀 올라오지만 꾹 참아 버린단다. 정말이지 저 남자와 어떻게 살아갈꼬, 우울증에 걸질 지경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이들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조잘조잘 흉을 보는 구두쇠 남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가난해질까에 대한 불안만큼 돈을 축적하다 보니 자연히 돈은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느껴지고 지출까지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모아놓은 돈이 한 푼이라도 빠져나가면 지금껏 확보된 자신의 존재감과 안정감도 함께 무너지는 것 같은 환상적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 이것은 대상관계이론에서 말하는 분리불안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아이가 18개월 전후가 되면 그동안 공생관계에 있던 어머니와 자신은 분리된 존재란 것을 알게 되므로 엄마와 떨어져 있으면 엄마가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불안을 상쇄하기 위해서 아이는 부모가 자기 마음속에 안정된 대상으로 자리 잡기 전까지는 포근한 이불이나 아기곰 등의 중간대상에 집착하면서 언제나 자기가 가질 수 있는 어머니의 대체물로 인식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에 '내면의 고요한 소리'가 되어 외롭고 힘들 때 자기를 버티게 해 주고 위로해 주는 하나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두쇠라 불리며 돈을 쓰지 못하는 남편들에게 있어서 자기를 지켜줄 안전한 중간대상은 다름 아닌 '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간대상으로서의 '돈'이 남편을 지배하고 있다면 아내가 지금 당장, 남편의 마음속에 하나의 안전한 대상으로 자리 잡아 준다면 남편의 '돈'에 대한 집착은 점차 사라져 갈 것임을 필자는 안다.
김미애 대구과학대 교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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