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출동 24시 현장기록 112] 초보 112요원의 고군분투 적응기

나는 어릴 적부터 경찰관이 정말 되고 싶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그 꿈을 이루고야 만 대한민국 열혈 여경이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경찰은 뭐든지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슈퍼맨으로 보였고, 거기엔 항상 112가 있었다. 그래서 난 국민과의 접점이자 경찰의 최일선이라 할 수 있는 112지령실에서 한 번쯤 근무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112신고센터에 지원을 했고, 결국에는 지원한 곳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한 지 두 달째에 접어든다. 오늘 이야기는 좌충우돌 초보 112요원의 고군분투 적응기이다.

"일단 신고는 받아봐야 느낀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이야기하고 연습해도 실전에 투입되어야 제대로 안다."

나를 강하게 키운다며 헤드폰을 던져주던 우리 팀 반장님이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다. 지령실로 발령받자마자 복잡한 112신고시스템의 작동방법과 대화기법, 무전지령요령 등 장기간의 교육을 받았고, 경북 관내 지도와 주소명이 총망라된 책자와 112지령 매뉴얼도 수차례나 읽어보았다. 더구나 퇴근 후 집에선 가족들을 상대로 112신고를 접수하는 역할극도 수십 번이나 해보았다. 그런데도 실전에 투입된 첫날, 막상 헤드폰을 끼고 첫 신고를 받으려니 얼마나 떨리던지….

"내가 옆에서 같이 들으면서 부족한 것은 대신 물어볼 테니 걱정 말아요. 연습한 것처럼 일단 신고를 받아보자고요. 무엇보다 자신감이 제일 중요해요."

드디어 첫 신고가 왔다.

"예, 겨…경찰입니다."

"여기요!"

신고자 목소리가 날카롭고 급하다. 혹시 첫 신고부터 강력범죄 신고는 아닐까? 내 두 귀는 완전 긴장 상태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 순간 나는 개미들이 지나가며 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놀이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어요. 경찰관이 대신 훈계를 해주세요!"

순간 맥이 탁 풀렸다. 단순 청소년 비행에 대한 신고라니…. 그래도 어찌 생각하면 '강력범죄가 일어난 것보단 다행이지 않은가'라며 스스로 다독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나의 첫 신고가 이렇듯 허무하게 지나가버렸다.

그런데 다음 순간.

"(시끌시끌) 여기요! 여기 그2린데요 빨리 좀 와주이소."

"네? 그리요?"

사투리와 억양이 매우 심한 할아버지 목소리였다. 신고가 걸려온 지역은 울진으로 확인되었다. 아무래도 시골 할아버지인 것 같았다. 귀도 어두우신 듯 연신 그믐리가 맞냐는 나의 질문에 계속 큰소리로 소리를 지르신다.

"여기 그리라 카니깐! 빨리 좀 와달라 하니까네…!"

"신고자님, 그리가 확인이 안 되는데, 주소를 천천히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리! 아 뭐 그렇게 물어? 탁 하면 알아들어야지! 경찰이 그것도 몰러? 빨리 와!"

이윽고 '뚜뚜뚜'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일단 경찰관이 출동을 하려면 위치 파악이 우선이다. 그래야 우선 지역경찰이 출동할 수가 있다'고 그 긴 교육과정에서 귀가 따갑도록 배웠다. 그런데 신고자의 사투리와 막무가내식 신고로 위치파악에 애를 먹을 줄이야. 지역이 울진이고, 그? 여기까지만 확인이 되었기에 무척이나 당황한 나는 경력이 훨씬 많으신 옆자리 선배들께 물어보니 바로 아신다. 울진군 후포면에 '금음리' 아니냐고. 경북엔 23개 시군이 있어 그 면적이 매우 넓고 그중에서도 동, 면, 리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심지어 내가 태어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지명이 수두룩하다. 경북 관내 지도와 주소명 책자를 뒤적여 보고, 인터넷으로도 검색해 보았다. 후포항 옆 7번 국도를 따라 해변을 접하고 있는 '금음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다시는 못 알아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첫 근무를 마치고 되돌아 보았다. 그리고는 중요한 가르침을 받은 것을 느꼈다. 신고자는 급박한 상황에서 신고하는 것이기에 접수요원인 내가 언제 발령을 받았는지, 그 지명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전혀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 일단 경찰이 빨리 출동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국민 눈높이에 내가 맞추는 것, 그것이 진정한 치안의 첫걸음이라 생각한다. 내가 부족한 것이고 내가 지명에 낯선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탓이다. 이젠 방법이 없다. '오늘밤 퇴근하면 경북 관내 주소록을 통째로 씹어먹으며 모든 지명을 외워버리리라!' 굳게 다짐했다.

그 뒤로도 나는 선배들이 신고받는 것을 보며 알음알음 배웠다. 매일매일이 새로움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신고내용을 단번에 못 알아 들어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되물어보는 아주 조금의 노하우가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갈 길이 멀다.

마지막으로 조금 더 빠른 112가 되기 위해 한 가지 제언해본다. "신고할 땐 위치와 신고 내용을 정확히!" 항상 신고하실 때 위 2가지를 생각한다면 좀 더 신속한 경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채혜진 경북지방경찰청 112종합상황실 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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