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비나이다, 우리 동네 평안하길" 경찰관들의 기원

대구 서구 비원지구대

장준영 대구 서부경찰서 비원지구대장이 27일 모든 주민들이 범죄 없는 동네에서 마음 놓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지구대 입구에 세워진 무영 장군 비석 앞에서 정성껏 정화수를 떠놓고 기원을 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장준영 대구 서부경찰서 비원지구대장이 27일 모든 주민들이 범죄 없는 동네에서 마음 놓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지구대 입구에 세워진 무영 장군 비석 앞에서 정성껏 정화수를 떠놓고 기원을 하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msnet.co.kr

대구 서구 원대동에 가면 대도시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진다.

이 동네에 있는 비원지구대 대원들은 동네 비석 앞에 매일 오전 6시면 깨끗한 물을 떠 놓는다. 벌써 8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는 비원지구대만의 특별한 의식이다.

장준영 지구대장은 "범죄 없이 동네가 평안해 모든 주민들이 마음 놓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비석 앞에 정성껏 물을 길어 놓고 있다"며 "지난 2006년 이후 비원지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이면 누구라도 이 의식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누구의 비석이기에 경찰관들이 이토록 정성스레 모실까, 또 진짜 이유는 뭘까.

높이 1m, 폭 50㎝가량 크기의 비석은 100년도 훨씬 넘은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06년 동네 주민들이 이 비석의 정체를 알고자 경상북도 문화재 발굴팀에 조사를 의뢰했다. 비석에 희미하게 새겨진 글을 분석한 결과, 이 비석은 임진왜란 당시 원대동에 침입한 왜적을 물리치고 전사한 장군의 넋을 기리고자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다. 최소 100년 이상된 공적비지만 훼손이 심해 어느 장군의 비석인지는 아쉽게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이 비석은 20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주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다 주목을 받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그때 이후 주민들은 이 비석의 정체를 알고 싶어했고, 문화재 발굴팀에 조사까지 의뢰하게 됐다.

사연은 이렇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던 이 비석이 20년 전쯤 쓰러졌다. 그 일이 있은 후 평화롭던 동네에 좋지 못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김사용 원대5가 주민자치위원회 고문은 "당시 북부파출소(현 비원지구대) 직원들이 갑자기 중병에 걸려 쓰러지고, 동네에 살인과 강도 사건 등 흉흉한 일이 자주 일어났다"고 했다. 우연히 쓰러진 비석을 발견한 동네 원로들은 비석이 노했다(?)고 여겼고, 정성을 들여 그곳에 다시 비석을 세웠다. 김 고문은 "그랬더니 희한하게 동네에 평화가 다시 찾아왔고, 그 뒤 주민과 경찰관들이 지극 정성을 들여 돌봤다"고 했다.

물을 떠 놓는 의식은 2006년 당시 지구대에서 팀장으로 근무하던 장준영 지구대장이 시작했다. 다른 경찰관들도 동참했다. 그러다 아예 당직 팀장이 이 의식을 책임지도록 비원지구대만의 원칙을 세웠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비원지구대 경찰관들은 의식을 치르고부터 매년 특진자와 승진자가 나오는 등 좋은 일들이 생겼다고 했다. 비원지구대는 다른 곳에 근무하는 경찰관들로부터 '터 좋은 곳'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비원지구대와 동네 주민은 경찰의 날인 매년 10월 21일이면 비석 앞에서 모여 함께 고사까지 지내고 있다.

장준영 비원지구대장은 "범인 검거를 미신에 의존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직원과 주민들의 우려도 있다. 하지만 그저 동네가 평화롭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며 "비원지구대 경찰들은 임진왜란 때 동네를 지켰던 비석의 주인처럼 주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이 되겠다는 다짐을 비석 앞에서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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