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人터view] 대구시 떠나는 여희광 행정부시장

"대구 컬러풀 축제 정말 멋지더라" 젊은이들 대화에 뿌듯

대구시의 든든한 반석과 같았던 여희광(55) 행정부시장이 29일 대구시를 떠난다. 1983년 대구시에서 공무원을 시작한 지 31년 만이다. 중앙부처에서 일한 5년을 빼더라도 만 26년을 대구에서 일했다. 곳곳에 그의 손길을 미쳤다. 행정부시장을 끝으로 대구시를 떠나는 여희광 행정부시장을 만났다.

-대구에서만 20여 년을 일하며 보직을 두루 맡았다. 지난해 4월부터 1년 4개월간은 대구시의 핵심 자리인 행정부시장으로 일했다. 시원함보다는 아쉬움이 더 클 것 같다. 대구시를 떠나는 기분, 소회가 어떤가.

▶시민들께 죄송하고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31년 동안 뭐했나 생각하면 죄송할 따름이다. 3대 도시로서의 위상을 뺏기고, 젊은이가 떠나는 도시가 된 데 대해 죄책감마저 든다. 공직생활 대부분을 대구에서 일했다. 그 기간 나름대로는 가정이나 나 자신보다 대구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과를 볼 땐 대구 발전을 위해 별로 기여를 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이는 대구시 공무원으로서 노력이 부족했거나 방향을 잘못 잡았기 때문인 것 같아 죄송하다. 그러나 좋은 시장님이 오셨고, 능력 있는 후배 공무원들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좋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대구시를 떠나지만, 항상 성원하며 필요하다면 언제든 힘을 보탤 것이다.

-빈틈없이, 철두철미하게 일을 잘하지만 '너무 꼼꼼한 것 아니냐'는 평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인정한다. 성격 탓도 있고 습관이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획 세운 것을 현장에서 적용할 때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 때문에 실수나 착오가 없도록 꼼꼼하게 하나하나 챙기는 것 같다. 또 오래전 을지훈련 때 학교 주변 길이 달라진 것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 양곡을 실은 트럭이 양곡배급소였던 학교에 진입하지 못한 경우를 경험한 뒤부터 꼼꼼하게 챙기는 것이 몸에 배기도 했다. 이유야 어찌 됐건 누군가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꾸려고 하지도 않았고, 그 역할을 한 것에 후회도 없다.

-많은 부서에서 여러 분야의 일을 했다. 재임 기간 중 가장 뿌듯한 업적 딱 하나만 꼽으라면.

▶지난해 10월 대구컬러풀페스티벌 때 일이다. 당시 반월당에서 중앙로를 따라 진행됐던 거리 가장행렬 페스티벌을 마치고 도시철도 반월당 역사로 내려갔는데, 젊은 학생들이 상기된 얼굴로 "너무 즐거웠다" "대구가 이렇게 멋있는 줄 몰랐다"는 얘기를 주고받는 걸 들었을 때 대구시의 부시장으로서 정말 행복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2002년 문화체육국장으로서 월드컵 거리 응원을 기획하고 탈 없이 잘 마친 게 가장 보람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범어네거리를 십자 형태로 붉게 물들였던 응원단의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대구의 교통 대동맥과 같은 범어네거리를 완전히 막을 수 없어 교통 통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범어네거리에 모인 시민들이 인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경기 직전 대로로 나와야 하는 상황이어서 안전사고 우려가 컸다. 또 차량을 일시에 차단했다가 끝나고 즉시 개통해야 하는 차량 통제와 시설 문제 등도 정말 힘들었다. 몸살이 날 정도였지만 뿌듯하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미친 듯이 일했던 적도 있다. 1998, 99년 복지정책과장 시절, 외환위기가 닥쳐 기업이 도산하고 거리 노숙자가 발생할 때였다. 겨울이 다가오는데 노숙자는 많아 동사 사고를 막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새벽까지 대구역 등을 쫓아다니며 자고 있던 사람들을 일일이 깨워 노숙자 쉼터, 희망원 등으로 모셨다. 그때 정말 몰입해서 일했고, 인정도 받아 국장으로 승진했다.

-오랜 시간 대구시에 근무하면서 대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이 고민했을 것 같다.

▶대구의 인구가 인천을 넘어서거나 부산의 마천루처럼 고층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대구는 오히려 이와 반대로 환경과 문화, 시민의식을 앞세워 품격 있는 도시로 가꿔나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뭔가를 새롭게 짓거나 만들기보다는 남부권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발전시켜 신도시'개발'팽창 일변도의 수도권과 대비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다.

서울에 출장 갔다가 대구로 내려올 때 동대구역 도착 직전 안내 방송이 나올 때 짐을 챙기는 등 하차 준비를 하는 분들을 보면 뭉클하다. 대구에 살아줘서 고맙고, 대구에 와 줘서 고맙다는 생각에 눈물이 고일 정도다.

-많은 동료, 후배와 함께 오랫동안 일했다. 떠나면서 동고동락했던 동료에게 꼭 전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하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공격적인 얘기 하나만 하겠다. 최소한 같이 공무원을 시작한 동기 중에선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일했으면 좋겠다. 고시 출신이든 공채 출신이든 내 동기 중에선 내가 최고다, 제일 낫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일해야 한다. 물론 나도 못했지만 이렇게 할 때 본인도 좋고, 시민들도 좋고, 대구도 발전할 수 있다. 대구에서 시민들이 즐겁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이제 막 대구의 선장으로 항해를 시작한 권영진 대구시장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잘 보필해 일 한번 멋지게 해보고 싶었는데 떠나게 돼 아쉬울 따름이다. 시민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직원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오로지 시민행복' '반드시 창조 대구'를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건강이 좋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민감한 얘기지만 마지막으로 행정부시장에서 물러난 뒤의 계획과 일정이 궁금하다.

▶한동안 휴직하면서 그동안 소홀했던 건강에 신경을 쓸 생각이다. 건강검진에서 장기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와 당분간 휴직하면서 건강 회복에 주력할 계획이다. 건강을 회복한 뒤 복귀해선 봉사하는 직책을 맡아 일해보고 싶다. 약자들, 억울한 사람들 편에서 베풀고 봉사하는 일을 꼭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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