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대구가톨릭대학교 안중근 연구소, 이상화기념사업회가 27일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3자 협약을 맺었다. 세 단체는 각자 서로 다른 방법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신봉사했던 정신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되살려 대구시민들의 건강한 시민성과 연결하려는 목표를 세웠다. 환영한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보다 동래에서 먼저 시작됐다, 하지만 대구를 국채보상운동의 진원지로 본다. 이유는 대구 유'무명 인사들이 국채보상운동을 지엽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전국민적인 운동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서상돈은 거금 쾌척으로, 김광제는 반전평화 독립운동으로 국채보상운동의 판을 키웠다. 기생 앵무도, 남일동 폐물폐지부인회 등도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서면서 들불처럼 퍼져 나갔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는 국채보상운동 관서지부장(평양)을 지냈다. 안중근 연구소가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세워진 것은 안 의사가 대구천주교 근대 교육기관인 해성재(대구 효성초교 전신)에서 초빙강연을 가진 사실과, 안 의사의 2남 1녀 중 장녀로 8세에 아버지를 잃고 일제의 감시를 받던 장녀 안현생(1902~1960)이 프랑스 신부의 보호를 받아 제정 러시아로 망명해서 불문학과 미술을 공부한 뒤, 6'25 때 대구로 피란와서 효성여대 교수를 지낸 인연이 복합 작용했다. 안 의사의 2남 1녀 가운데 안현생 여사는 작고했지만, 다른 가족들은 살아있는지, 그 삶은 어떤지 추적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북에는 소월, 남에는 상화'라고 할 정도로 우리 문단을 대표하는 이상화 시인은 친일 행각이 전혀 없는 대구산(産) 저항 시인이다. 이상화기념사업회는 상화의 저항정신을 오늘날 시대정신으로 되살리기 위한 민간인들의 모임이다.
이제 3자 협약을 맺은 세 단체는 대구가 기려야 할 3대 정신으로 국채보상운동, 안중근 의사의 구국 쾌거, 이상화 시인의 저항정신을 대구와 연결해 건강한 시민성을 강화하게 된다. 대의명분을 따르고 선공후사하는 대구의 시민성이 국채보상'안중근 의거'이상화 정신과 결합한다면 대구를 넘어 우리나라를 되살릴 큰 힘을 발휘하리라 믿는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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