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디저트] '사람책'을 아시나요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바로 내 얘기잖아" 뭉클한 감동

대구에 사람책을 빌려주는 사람도서관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사람책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본리도서관에서
대구에 사람책을 빌려주는 사람도서관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사람책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본리도서관에서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라는 주제로 사람책과 독자들이 대화하며 정보를 나누고 있다. 본리도서관 제공

"'사람책'을 아시나요?"

이달 8일 대구 중구 시립중앙도서관에서 강연한 바바라 스트리플링(Barbara K. Stripling) 미국도서관협회장은 미국 공공도서관의 변화상을 이야기하면서 '사람책'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사람책은 덴마크 출신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Ronni Abergel)이 2000년에 처음 시작한 것으로 '무지 때문에 편견이 발생한다'는 생각에서 사람 간 면(面) 대 면 소통을 통한 정보 공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사람책은 쉽게 말해 특정 인물이 주제를 정해 자신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는 런던에서 사람책을 읽는다'는 책을 통해 알려졌다.

◆'아울러', 대구에서 첫 사례

대구에도 '사람책'을 빌려볼 수 있는 '사람도서관'이 있다. 지난 2011년 4월 대구에서 문을 연 사회적 기업 '아울러'가 사람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25일까지 사람책 프로그램을 통해 45명의 강연자가 219명의 시민을 만났다. 25일 현재까지 모두 82명이 사람책으로 등록되어 있다.

'아울러'는 이달 8일 칠곡군 가산면 학상리 마을 문화공간 '학수고대'를 찾았다. 이날 하루 이곳에서는 사람책 행사를 통해 4명의 강연자가 각자 삶의 이야기를 주민들에게 전해주었다.

이날 사람책 프로그램을 접한 한 주민은 "요즘 아이들은 책 읽는 걸 싫어하는데 딸이 흥미를 갖고 강연을 들었다"며 "대리만족보다 더 좋은 대리체험이었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26일 경상여중에서도 '인간미중독'이라는 주제로 사람책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모(14) 양은 "대화가 불편하지 않아 동네 언니가 직접 이야기해주는 느낌이 들었다"며 "종이책보다는 훨씬 친근감도 있고 공감이 갔다"고 했다.

'아울러'는 유명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이야기를 사람책으로 풀어낸다. '아울러'의 사람책은 성공이란 결과보다는 성장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강연자는 주로 대학생이다. 박성익 아울러 대표는 "예를 들어 사람책이 청소년들에게 '나는 이렇게 진로를 정하게 됐어'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 순간 독자가 가진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에 바로 감응이 온다"고 했다.

◆공공도서관도 사람책 빌려줘

'아울러'가 민간 사람도서관이라면 공공 사람도서관도 있다. 대구 달서구가 운영하는 본리도서관은 지난해 7월부터 지난달까지 13회에 걸쳐 52명의 강연자를 초청해 사람책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곳은 매월 1회 강연자 1명 당 수강생 7명 정도를 모집해 1시간 30분 동안 진행한다. 30일에는 지금껏 인기 있었던 강연자 3명을 다시 초청해 사람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등록된 사람책은 전문가나 유명인사도 있지만, 특이한 이력이 있거나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지역민들도 있다. 예를 들면 요가 강사 할아버지, 오지 여행만 하는 영어 선생님, 매일 시를 쓰는 금융종사자 등이다. 그래서인지 '된장 맛있게 담그기' '쌩얼로 다니지 맙시다' '기죽지 말고 삽시다' 등 흥미를 끄는 강연이 즐비하다.

채상호 달서구청 도서관과 주무관은 "지역에 있는 공공도서관이다 보니 주부층에서 사람책 인기가 높다. 또 이용객들이 원하는 강연자를 찾아서 강연 시간을 갖기 때문에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고 했다.

이런 인기를 반영해 시립중앙도서관은 10월부터 사람도서관을 운영할 계획으로 현재 사람책으로 활동할 재능 기부자를 모집 중이다. 동구 안심도서관도 사람책 프로그램 운영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넘어야 할 산도 있어

독자들의 반응이 좋음에도 사람도서관의 갈 길은 멀다. 사람도서관과 사람책이란 말이 아직 시민들에겐 낯설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책에 대해 "책을 읽어주는 곳이냐"는 문의전화가 많다.

박성익 아울러 대표는 "사람책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도 '그런 건 술자리에서 늘 하는 이야기 아니냐'라는 이들도 있다"며 "사람책이란 걸 알리는 것 못지않게 사람책의 의미를 홍보하는 것도 앞으로의 숙제"라고 했다.

게다가 장서와 달리 사람이라는 특성 탓에 소장해둘 수도, 원하는 대로 준비해둘 수 없다는 점도 사람도서관의 힘든 점이다.

채상호 주무관은 "'이런 이야기도 사람책이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길 꺼리는 경우가 많아 섭외가 생각보다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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