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하늘의 허락 받아야 보이는 '신선들의 세계'

中 후난성 장가계·원가계

영화
영화 '아바타'의 배경이 된 원가계.
귀신도 다니기 어렵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귀곡잔도.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다.
귀신도 다니기 어렵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귀곡잔도. 아래는 천 길 낭떠러지다.

눈이 가는 곳은 모두 비경이다. 스케일도 웅장하다. 수백m 높이의 송곳 같은 돌기둥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고 소나무들이 바위 절벽을 뚫고 자라는 모습이 신비롭다. 그 사이로 구름이 머물고 있다. 선계(仙界)가 따로 없다. 한 폭의 산수화다. 중국 후난성 서북부에 위치한 장가계(張家界)는 꿈속에서나 볼 듯한 수려한 산세와 계곡, 기암괴석이 꼭 무릉도원을 닮았다. 그러나 장가계는 누구에게나 허락하지 않는다. 일 년 내내 궂은 날씨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가계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하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황석채

황석채(黃石寨)로 가는 길 한 쪽에 한글로 이런 간판이 붙어 있다. '황석채에 오르지 않고 어찌 장가계를 봤다고 할 수 있으랴'.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1,300m 높이의 산에 올랐으나 황석채는 볼 수 없었다. 구름과 안개가 황석채를 가렸다. 이렇듯 장가계는 하늘이 허락할 때만 볼 수 있다.

◆수려한 천자산

천자산(天子山)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길이 2㎞에 달하는 천자산 케이블카를 타면 스릴이 넘친다. 평범하지 않다. 수직으로 상승한다. 그만큼 가파르다. 계곡과 봉우리 사이로 지나가는 케이블카는 천자산의 기암괴석과 봉우리를 공중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선계가 따로 없다. 바위기둥은 매섭다. 야성을 가진 것 같다. 바위기둥이 각이 져 있고 날카롭다. 케이블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협곡과 숲, 그리고 수천 개의 바위 봉우리를 보고 있노라면 숨이 막히고 탄성이 절로 나온다. 천자산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바위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어필봉(御筆峯). 흙이 없는 돌 봉우리 위에 푸른 소나무가 자라 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 놓은 것 같은 형상을 지닌 이 봉우리에는 전쟁에서 패배한 황제가 홧김에 붓을 집어던져 그 붓이 땅에 꽂혀 생긴 봉우리라고 해 '어필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눈앞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수천 개 바위 봉우리들의 쇼에 빠져 있는 순간 정상에 도착한다. 6분간의 '대자연 쇼'이다.

◆십리화랑

천자산 중턱에 위치한 '십리화랑'(十里畵廊). '산수화의 10리 화랑'이라는 뜻이다. 왕복 10리(4㎞)에 걸쳐 그림 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모노레일을 타고 양쪽에 펼쳐진 천연 산수화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인간의 솜씨가 아니다. 하늘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노레일 종점에서 저 멀리 보이는 '세 자매 바위'. 큰 언니는 아기를 등에 업고, 둘째는 아기를 안고, 막내는 임신 중인 모습을 하고 있다. 십리화랑은 카메라만 들이대면 작품이 된다. 어제 보지 못한 황석채를 보상받은 기분이다.

◆영화 '아바타'의 배경 원가계

원가계(袁家界)는 장가계와는 별개의 관광지가 아니다. 장가계 지역 안에 있는 하나의 풍경구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길이 원가계 트레킹 코스다. 까마득한 협곡에서 300m 이상 솟은 바위 봉우리를 보면 탄성이 저절로 터진다. 붉은 돌기둥마다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 거대한 분재처럼 보인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푸른 숲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아 어질어질하지만 환상 같은 풍경에 눈길은 자꾸 아래로 향한다. 바위틈에 뿌리 내린 소나무가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걸려 있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가 따로 없다.

이 지역은 영화 '아바타'에 나오면서 더 유명해졌다. 좁은 길에는 관광객들이 몰려 줄을 서서 가야 할 정도다. 중간마다 전망대와 휴게소가 나오면 장사꾼들의 호객 소리와 관광객들이 떠드는 소리가 뒤섞여 혼잡을 이룬다. 가끔 인파를 헤치며 손님을 태운 가마까지 다녀 혼을 빼놓기도 한다. 1시간 정도 트레킹을 하면 웅장한 산세에 한 번 감탄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 아래로 내려간다. 산 절벽에 건설된 백룡엘리베이터는 세계 최고 높이(326m)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돼 있다. 야심을 현실로 빚어낸 중국인의 스케일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내려오는 데 2분이 채 안 걸린다.

◆웅장한 천문산(天門山)

천자산이 수려하다면 천문산(1,518.6m)은 웅장하다. 이곳 역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른다. 길이가 자그마치 7.45㎞. 인간이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위대한 인공구조물이다. 케이블카 출발역은 장가계 시내에 있다. 가정집 지붕과 장가계역 플랫폼 상공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중간 기착지를 거쳐 천문산 정상까지 이어진다. 가장 높은 고도 차가 1,279m에 달해 케이블카 안에서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면 저절로 오금이 저린다. 케이블카 종점에 내리면 이번엔 천 길 낭떠러지 절벽에 길을 낸 유리잔도(琉璃棧道)와 귀곡잔도(鬼谷棧道)가 있다. 발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화유리가 깔린 약 70m 길이의 유리잔도는 웬만한 담력을 지닌 사람들도 선뜻 발걸음 떼기를 주저하는 아찔한 길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길은 식은땀 나는 '고통'에 가깝다. 유리잔도가 끝나면 귀곡잔도가 이어진다. 유리잔도에 놀란 가슴은 조금 진정된다. 발아래 시야만 막았을 뿐인데 관광객들의 발걸음은 가볍다. 귀곡잔도에는 관광객들이 소원을 적은 붉은 천들을 난간과 나무마다 잔뜩 매달아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거대한 바위에 큰 구멍이 뚫린 천문동(天門洞)을 보려면 다시 리프트와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 기착지까지 내려가야 한다. 케이블카 중간역에서 천문동까지는 셔틀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산비탈을 깎아서 만든 아흔아홉 구비 '하늘로 통하는 길'인 통천대도(通天大道)이다. 천문동에 가려면 가파른 999개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러나 천문동을 가까이에서 보려는 열정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헉헉거리며 계단을 오른다. 높이 131m, 폭 57m, 길이 60m의 웅장한 침식동굴인 천문동은 하늘과 맞닿아 장관을 연출한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걸작품인 천문동은 1,000m 높이의 절벽 위에 걸린 채 구름과 안개를 빨아들여 마치 하늘의 문이 열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사흘 내내 비가 오더니 나흘 만에 장가계 하늘이 열렸다.

최재수 기자 biochoi@msnet.co.kr 사진 신우식(매일애드 근무) 씨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