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명량'때문일까? 쏟아지는 난중일기

지식공작소, 890쪽 세로쓰기 도서출판 '여해' 증보 완역본

난중일기/이순신 지음/이은상, 노승석, 고정일 등 옮김/지식공작소, 여해, 동서문화사 등 펴냄
난중일기/이순신 지음/이은상, 노승석, 고정일 등 옮김/지식공작소, 여해, 동서문화사 등 펴냄

영화 '명량'이 한국영화 역사 이래 최다 관객을 동원하면서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 한글 번역본이 쏟아지고 있다.

지식공작소가 8월에 펴낸 '난중일기'(이은상 옮김)를 비롯해 아이웰콘텐츠가 8월 전자책 '난중일기'를 펴냈다. 또 커뮤니케이션스북스가 큰글씨책 '난중일기'(이은상 옮김)를 8월에 출간했다. 이에 앞서 7월에는 도서출판 '여해'가 증보(增補) 교감완역 '난중일기'(노승석 옮김)와 학생용으로 '쉽게 보는 난중일기'(노승석 옮김)를 잇따라 펴냈다. 그런가 하면 동서문화사는 고정일 씨가 역해한 '난중일기'를 9월 9일 자로 출간했다.

'난중일기' 한글판 출간이 꼭 영화 '명량'의 대성공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난중일기'는 해마다 몇 권씩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 '명량' 이전에 출간된 '난중일기'가 주로 어린이 독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올해는 성인독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난중일기'가 내용을 대폭 줄이고, 그림을 많이 넣었으며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쓰거나 도움말을 보탰다면, 성인을 위한 '난중일기'는 대체로 빼거나 더한 부분 없이 한문으로 쓴 '난중일기'를 우리말로 옮기고 읽기 쉽도록 편집한 정도다. 그럼에도 성인을 위한 '난중일기'가 출판사마다 책 페이지와 두께가 크게 다른 것은 글씨 크기를 달리했거나, 편집에 초점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가령 지식공작소가 8월 15일 펴낸 '난중일기'는 전체 분량이 894쪽에 달한다. 지식공작소 측은 이를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글줄을 앉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지식공작소가 펴낸 '난중일기'는 894쪽임을 감안하더라도 책이 무척 두껍다. 재생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해당 출판사는 재생지를 사용한 까닭을 '형광등 아래에서도 눈부심 없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이순신 장군이 친필로 일기를 썼던 느낌을 전하기 위해 글씨를 세로로 앉혔다.

도서출판 '여해'가 7월 23일 출간한 증보 교감완역 '난중일기'(노승석 옮김)'는 '난중일기' 전편을 해독한 완역본으로 2007년 '충무공유사' 해독과정을 통해 새로 발굴한 장군의 32일치 일기를 추가수록하고 있다. 여해가 펴낸 '난중일기'는 또 부록을 두어 이순신 장군이 정유재란 이후 수군을 재건하는 과정과 명량대첩의 승리요인을 설명하고 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1592년(선조 25) 5월 1일부터 전사하기 한 달 전인 1598년 10월 7일까지 쓴 진중일기다. 거의 매일 썼으며, 장군은 제목을 붙이지 않았으나 1795년(정조 19)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 때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내용은 엄격한 진중생활, 국정에 대한 느낌, 전투 후의 기록, 수군 통제전술, 부하들에 대한 상벌, 가족, 친지, 부하, 내외 요인들의 내왕과 편지글 등을 포함하고 있다.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 기록유산이며 충남 아산 현충사에 있다. '난중일기'에는 그날의 날씨와 함께 장군의 행적을 적고 있다. 주로 사실 관계를 기록했을 뿐 평가를 내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난중일기'를 한글로 최초로 번역한 사람은 벽초(碧初) 홍명희 선생의 아들 홍기문으로 1955년 한글로 번역한 '난중일기'를 국내에 소개했다. 이는 초고본을 확인하지 않고 활자본을 토대로 번역한 것이므로, 완전한 번역은 아니었다. 이후 1968년 이은상이 '난중일기'를 번역했다. 또 성균관 한림원 교수와 순천향대 교양학부 및 이순신연구소 교수를 역임한 한학자 노승석이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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