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는 동경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경대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는 1960년 영화감독 이타미 만사쿠의 딸이자 화가인 이타미 유카리와 결혼해 학원 강사로 생활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꾸려나갔다. 1963년 맏아들 히카리가 태어났다. 그런데 히카리는 두개골에 결손을 가진 기형아였다. 뇌가 두개골 밖으로 나온(뇌 헤르니아) 기형아를 본 젊은 아버지는 기겁을 했다.
스물세 살에 최연소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교수 지망생 오에 겐자부로는 너무나 당황해 도망치고 싶었다. 소설 '개인적 체험'은 아이가 수술을 받기까지 6일 동안 고민하고 갈등한 심리를 기록해 극화시킨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아이에 대한 결정을 회피하면서 방황하다가 결국 현실을 받아들여 아이를 수술시킨다. 이 작품은 1964년 신쵸사문학상을 수상했다. 뜻하지 않게 장애아를 얻은 충격이 작가적 달란트를 한층 더 뛰어나게 발휘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히카리를 수술시킨 후 그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자신의 행로를 바꿨다. 교수의 길을 포기하고 히카리가 정신지체 장애를 안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자신을 바쳤다. 히카리를 장애인학교에 등록시키고 등'하교에 동행했다. 가정교사를 들여 피아노를 가르치며 히카리와 삶을 같이했다. 그리고 히카리가 음악에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많은 노력 끝에 히카리는 작곡을 하게 됐고, NHK의 후원으로 전국 순회 연주를 했다.
오에는 아들이 소질을 계발해 나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데서 큰 위안을 얻었고, 인간을 바라보는 안목이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 오에는 정신지체아 아들을 둔 아픈 경험을 통해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애아를 자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이기주의를 파헤쳤다.
그러다 새소리를 구별해내고 예술적 천재성을 발휘해 정상인들에게 결핍된 영혼의 순수성을 드러내주는 구원적 존재로 장애인을 등장시켰다. 오에는 장애인과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반전반핵에 앞장섰고 인류 평화에 관한 많은 작품을 썼다. 마침내 59세에 일본인으로 두 번째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깊은 인간애와 구도자의 모습을 느끼게 하는 그의 자전적 에세이 '상처를 딛고 사랑을 되찾은 나의 가족'에는 17세기 영국 시인 헤릭의 시가 등장한다.
'행운은 살금살금 다가와서 우리 집 지붕에 머물렀다. / 소리 없이 쌓이는 눈이나 밤에 내리는 이슬같이/ 그것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으며 마치 햇살이 숲에 비칠 때/ 서서히 빛의 간지럽힘이 가지마다 퍼져가는 것과 같다.'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불행이 뜻하지 않게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예상치 못한 질병이 그렇다. 그럴 때 오에 겐자부로의 삶과 헤릭의 시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강구정 계명대 동산병원 간담췌장외과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