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29일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에서 미군 해병대원들이 성조기를 접어들고 헬리콥터를 탔다. 이에 따라 1858년 프랑스 전함이 다낭에 닻을 내린 이후 베트남 국민들은 비로소 외세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통일 베트남 정부는 즉각 '사이공'시 이름을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통일운동에 바친 국부(國父) '호찌민'으로 바꿨다.
호찌민(胡志明)은 30여 년 동안 베트남 민족운동을 이끈 지도자이며 아시아의 식민지 해방운동을 이끈 인물로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공산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21세 때인 1911년, 견습요리사로 식민지 종주국 프랑스에 첫발을 밟은 뒤 공산당의 창립 당원으로 식민지 해방운동을 시작한 그는 베르사유 회의에서 '베트남 인민의 8개 항목 요구'를 제출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1941년 베트남에 잠입한 그는 베트민(월맹'베트남 독립동맹회)을 결성, 1945년 8월에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마침내 정부 주석으로 취임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낡은 초가집에서 혼자 살다 1969년 오늘 심장병으로 급사했다.
그의 책상에는 평소 탐독한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놓여 있어 눈길을 끌었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국회 목욕탕 TV 논쟁…권성동 "맨날 MBC만" vs 이광희 "내가 틀었다"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