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타지에 나가 있던 딸아이가 몇 해 만에 집에 돌아왔다. 가족들과 떨어져 객지에서 혼자 생활한 게 힘들었던지 집에 오자 완전히 '나무늘보'가 되어버렸다. 어른들이 출근하는 것도 모른 채 늦잠을 자는 건 예사이고 제 엄마가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앉아 구경만 한다. 그런데도 그런 모습이 밉살스럽게 보이기보다 되레 측은해 보이는 것이다. '어린 것이 집에 돌아오니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은 모양이구나'하면서. 그래, 있는 동안만이라도 어리광부리고 게으름도 실컷 피우다가 가거라. 부모 품을 떠나 혼자서 살아나가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니. 집에 있어봐야 겨우 달포 정도, 또다시 집 떠나면 너 혼자 다 해야 할 일들인데 싶어 제 엄마도 잔심부름 외에는 일을 시키지 않는 눈치다.
딸아이는 집에 돌아오기 몇 달 전부터 만들어둔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이행하기 시작했다. 가고 싶은 곳도 있었고 만나고 싶은 친구들, 먹고 싶은 음식들도 잔뜩 적혀 있는 목록이었다. 언젠가 전화하면서 집에 가서 '먹어야 하는' 음식 목록을 죽 읽어준 적이 있는 그 목록이었다. 책을 읽지도 않고 신문을 보지도 않는다. 그런 것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있다는 듯이. 게으름 부리기도 그 리스트 안에 들어 있는지 "도서관 가서 책이라도 몇 권 빌려와서 읽어보지"하면 "안돼요, 실컷 놀다가만 갈 거야" 하는 것이다.
하루는 거실에 나와 봤더니 그야말로 큰 대자로 누워 있다. 아빠가 왔다 갔다 하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마치 나무늘보가 제 몸을 나뭇가지에 걸친 채 늘어져 있는 듯한 모습이다. 예전 같았으면 '기집애가 조신하지 못하구로' 하며 한마디 핀잔이라도 줬을 텐데 그날은 왠지 가슴 한 언저리가 먹먹해지는 것이었다. '어휴 어린 것이 객지에서 언제 저리 편하게 한 번이라도 있어 봤겠노. 집이니까 저러고 있을 수도 있는 거지.' 이런 게 집 아니겠는가. 언제 와도 너를 따뜻이 맞아줄 수 있는 곳. 어떻게 해 있어도 마음 편한 곳.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찾고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추석이다. 이제 많은 사람이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 집에서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을 또 만날 것이다. 명절이 되면 아무래도 다른 때보다 집 생각이 많이 나는 게 인지상정이 아닐까. 마음만 먹으면 자주 찾아가지 못하는 것도 아닌 시절이지만 명절엔 뭔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여전히 집을 두고도 오지 못한다. 그들에게도 여전히 집은 자신만의 안식처일 텐데….
명절이 되면 홀로 떨어져 살고 있는 딸아이가 한 번씩 생각이 난다. 이렇게 풍성할 때면 '밥이라도 제대로 챙겨 먹고 다니는지' 하는 생각이 더 드는 것이다. 제 요량 못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게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리라. 이번 추석엔 딸아이가 좋아하는 참깨 소가 든 송편 사진이라도 찍어 보내줘야 할까 보다.
홍헌득 특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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