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시집『흔들리며 피는 꽃』, 문학동네, 2012.
문학용어 가운데 '의도의 오류'라는 말이 있다. 문학의 내용이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해석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문학 작품의 의미는 함축적 언어에 의해 표출되기에 종종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 경우가 많다. 두루 아시는 바와 같이 도종환 시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시를 써온 시인이며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화와 관련된 활동을 해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 시도 '담쟁이'와 함께 민주화 과정에서 창작된 시다.
도종환 시인의 살아온 궤적에 비추어 볼 때 꽃의 의미는 민주적 가치쯤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 민주, 통일 등의 진보적 가치가 함축된 시어로 봄이 옳을 것이다. 민주적 가치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얻을 수 있는 가치다. 비에 잦으며 바람에 흔들리며 꽃이 피듯이 민주적 가치도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문학행사에서 명사로 초청된 분이 자신의 애송시를 낭송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이 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와 명예를 얻은 분이어서 민주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이 분이 도종환의 시를 애송하는 것을 들으면서 문득 오래 묵은 문학개론에 있던 '의도의 오류'가 갑자기 떠올랐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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