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 속에서-초보 농군 귀촌일기] 돌아간 다음 후회한다는 것은

자신의 장애를 알게 되면서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한평생 짐이 되고 못이 박혀 있을 부모님께 안쓰럽고 오히려 낳아주고 억세게 키워준 은정에 고마워하게 되었다는 어느 장애인 여성의 방송 수기를 들으면서 그날 밤 나는 노루잠을 이루어야 했다.

수화를 하는 장애인 엄마가 생각나서 코끝이 짠했다. 뇌출혈로 돌아가신 그이가 늘 내 삶에 겹쳐 한 폭의 삽화처럼 떠오르고 그리울수록 밉고 야속함이 뒤따르곤 했다. 복 받지 못하고 일찍 떠난 엄마 세상이 안타까워서.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든 세월이라는 옛말 그른 데 없었다. 찌는 듯 무더운 8월 여름철이면 우리 집은 벌써 쌀 고생을 했다. 엄마는 동네로 다니면서 수수쌀을 꿔 왔다. 풀기 없고 딴딴한 수수밥이 먹기 싫다고 우리 세 사내아이들이 툴툴거리면 엄마는 방앗간에 가서 가루를 내어 떡을 구워주셨다. 그래도 이밥을 먹을 수 있는 가을까지 가자면 이른 시간이었다. 엄마는 아빠를 도와 마을 동구 밖 치받이 돌밭을 일궈내고 돌로는 담을 쌓고 비워낸 땅에는 밭을 일구었다. 호박이며 감자, 옥수수, 콩 같은 것을 심고 거두어 곡기에 보탰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한테도 잘했다. 없는 살림이었지만 늘 색다른 음식이 나오면 이웃에 돌렸다. 설 명절 때가 돼야 먹는 시루떡이거나 입쌀만두를 하게 되면 이웃해 있는 건넛집에 꼭 떡을 한 사발씩 담아서 내 가곤 했다.

동네에 잔칫집이 나지면 늘 엄마를 부르곤 했다. 엄마가 부엌일도 싸게 잘했지만 늘 성수꾼이었기에. 엄마 또한 번다한 잔칫집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일을 해주곤 잔치설거지로 찰떡과 기름진 볶음채를 한 그릇씩 얻어 와서 우리 자식에게 맛보이는 즐거움에 더 열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잔칫집에서는 밤늦게까지 신랑 각시와 함께하는 오락 마당을 펼쳤다. 그때도 잔치잡이는 엄마를 불러내곤 했다. 엄마는 얌전하게 추는 도라지도, 여성다운 춤도 아닌 디스코 비슷한 자신만의 끼 있는 춤을 추곤 했다. 입으로는 노래를 하는 듯 외마디 소리맵시를 내면서 이쪽저쪽 옮겨 다니며 손짓 발짓 몸짓이 어우러진 흥겨운 춤사위에 구경 온 마을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손뼉을 치거나 폭소를 터트리고 같이 아예 덩실덩실 춤에 빠져 분위기를 고조로 이끌곤 했다. 나는 그러는 엄마가 창피하다고 다리를 잡거나 옷깃을 잡아서 끌어도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어린이 신문에 글을 발표하자 엄마는 새끼손가락을 꼽으며 막내가 글을 잘 써서 상장도 받았다고 만나는 동네 사람들한테 자랑을 놓곤 했다.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애면글면하셨던 엄마에겐 자식들의 작은 영예까지도 보람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 취직하고 틈틈이 한국 관광을 다녀보면서 놀라는 것이 있다. 동구 밖 지어 밭머리, 마당귀까지도 산소들이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고 알뜰살뜰 파란 잔디로 깨끗이 가꿔져 있는 것. 무서움보다 전통풍속이나 향수처럼 느껴졌고 기분이 꺼림하지도 않았다. 특히 조상의 산소에 예를 갖추는 1년 중의 가장 큰 추석 명절에 그 많은 사람들이 기러기 무리처럼 정연하게 움직이는 질서를 보고 감동했다.

나는 가슴이 쓸쓸했다. 우리 삼형제가 앞뒤로 모두 한국에서 취직하게 되면서 가끔 추석명절을 비워두게 되었고 잡풀이 가득 자랐을 엄마의 외로운 산소가 늘 마음에 걸림돌이 된다. 비운다는 것만큼 경우를 떠난 일이 없다. 남이 보는 것이 두려운 것보다 엄마 생전에도 대접 못 한 서러움들이 쌓이고 쌓여서 몸이 멀어질수록 맘에 잿빛 재가 앉았다.

언제나 자식은 부모한테 받기만 한다. 부모는 또한 언제나 자식에게 섬기는 가족이 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안갚음하는 것이 당위성인데…. 자신이 겪어봐야 안다고, 다 큰 자식을 둔 부모가 되거나 부모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우리는 늘 후회한다. 부모 시대를 외우면 고릿적 이야기로 웃지만, 없는데도 넉넉하고 적은데도 풍성해서 왠지 그립기만 하다.

부모를 잘 섬기지 못하거나 부모가 돌아가셔도 외울 것이 없어 하는 자는 더욱 창피하고 부끄럽다. 숨 쉴 때 효도하고 내 곁에 계실 때 한번이라도 진하게 사랑한 안받음으로 더는 미련이 남지 않고 가슴 아프지 않게 할 수는 없을까. 이제라도 길에서 어떤 줄기로 내 부모 같은 어르신들한테 닿아도 지팡이같이 부축하고 싶다. 그러면 죄업의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 온통 세상은 잘하고 섬기는 자들만의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류일복(중국동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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