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玄牛) 이경희(李景熙), 그는 화가다. 1925년생, 올해로 아흔이 됐지만 그는 오늘도 붓을 잡는다. 이 화백은 대구 미술계의 '전설' 같은 존재다.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포항부두'로 특선한 이후 30회에 이르기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작품을 출품했던 화가다. 지역 미술계에선 대구가 수채화의 메카로 지리매김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화가로 통한다. 개인적인 일로 20여 년 동안 붓을 놓은 일도 있었지만 그는 평생 종이와 패널, 붓, 물감, 팔레트를 끼고 살았다.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이 화백을 만났다.
◆난 아직 현역 화가
이 화백은 대구시 중구 동인동 대구시청 뒤 작은집에 산다. 이곳에 산 지 70년이 넘었다. 대문엔 항상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평상시에는 작은 태극기, 가끔 큰 태극기가 걸릴 때도 있다. 기자가 찾아간 그날은 제법 큰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반가운 손님이 오면 큰 태극기를 걸어. 그런데 왜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어?" 노 화백은 앉으라는 말 대신 약속 시간을 어긴 기자를 나무랐다.
그는 아직 정정했다. 비록 보청기를 끼고 있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그는 "아직 끄떡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팔씨름을 하자고 했다. 망설이다가 노 화백의 손을 잡았다. "힘줘봐? 힘 써보라니까?" 팔에 힘을 줬다. 꿈쩍도 안 했다. "화가가 팔이나 손힘이 없으면 끝이야. 외과의사도 손이 떨리면 끝인 것처럼 화가도 손 떨리면 그날로 끝인 거지."
그는 낮 12시만 되면 낡은 피아노 앞에 앉는다. "엉터리 연주야. 손힘을 기르기 위해서 하는 거야. 고등학교 교사할 때 구입했는데 백건우가 조율한 피아노지."
그는 그림 그리는 작업을 즐기는 듯 보였다. 개인적인 일로 잠시 붓을 꺾은 적은 있지만 평생 그림을 그려왔다. 그는 요즘 새벽 4시면 일어나 그림을 그린다. 평생 수채화를 그려왔지만 요즘은 유화를 많이 그린다. 현장을 직접 다니며 스케치하는 것도 여전하다. 아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붓끝에는 힘이 실렸다. "나는 아직도 현역 작가야."
◆상업학교 다녔지만 미술은 나의 천직
이 화백은 대구에서 태어났으나 칠곡 약목에서 살았다. 약목보통학교를 다녔는데 성적은 좋지 않았다. "다른 과목은 잘하지 못했어도 그림만은 잘 그렸어. 잘된 작품을 뒤에 있는 게시판에 붙였는데 내 작품이 항상 뒤에 붙었다"고 했다. 그의 첫 미술선생은 아버지였다. "미술도구를 사 주셨고, 대구에서 약목 집으로 오실 때마다 신문을 모아 오셔서 그 위에 줄을 긋는 등 연습을 했다"고 했다. 또 한 분 미술선생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었다. "예쁜 여선생이었는데, 옆에서 지도해 주실 때 분 냄새가 많이 났던 게 기억이 나."
초등학교 졸업 후 대구에 있는 명문 중학교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서울로 유학을 갔다. 휘문중학교를 다니다가 15세 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도쿄에 있는 동양상업학교에 입학했다. "좋은 학교는 아닌데 동양이라는 이름 보고 들어갔어. 동양에서 최고 좋은 학교라 생각해 들어갔지."
상업학교라 주산과 부기 등을 공부했지만 좋아하는 미술은 공부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고 20세 때 징병검사 통지서가 날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와 검사를 받으니 갑종. 비행병으로 결정됐다. "8월 2일 입대했는데, 15일 해방됐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거지. 전쟁이 길어졌으면 아마 가미카제로 쓰였을 거야."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경상북도 중등교원양성소 미술과를 졸업하고 1947년부터 대구공업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1949년 40호 크기의 그림을 그려 국전에 출품했다. 화물차를 타고 직접 서울로 갔다. 얼마 전 타계한 김흥수 화백 등 5명과 함께 특선을 했다.
◆붓을 꺾다
1992년 수채화에 있어 독보적일 만큼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던 이 화백은 어느 날 갑자기 붓을 꺾는다. 서양화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맏아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화백은 '그림이고 뭐고 아무것도 싫다'면서 평생 곁에 두었던 붓과 물감, 종이, 팔레트를 버렸다. 작품활동을 접고 칩거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20여 년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경희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더라고."
이 화백은 작년 1월 제자로부터 결혼기념일 축하 꽃 선물을 받았다. "집안에 꽂아 뒀는데, 꽃을 보니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그래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
◆아직도 바빠
그는 바쁘다.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많고 할 말도 많다. 말은 유수처럼 끊김이 없다. 작년 3월 원로 작가 초대전을 열었고, 올 3월에는 '구순 기념전'도 했다. 다음 달에도 전시가 계획돼 있다. "그림 그리는 게 즐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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