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준비하는 사찰 풍경
조그만 산마을에 족히 10개가 넘는 왓(Wat'절)이 있다. 저마다 입구에는 도이 끄라통을 축하하는 장식물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조그마한 규모이지만 정문 기둥 위에 세워놓은 커다란 흰색 사자상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압도한다. 경내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대나무로 뭔가를 분주히 만들고, 한쪽에서는 승려가 12지신상을 그리고 있다. 황금색 수건을 머리에 쓰고 정물처럼 앉아있는 노바스(동자승) 하나, 다가가 보니 TV 속 배구 경기에 흠뻑 빠져있다. 그의 머리 위로 일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 하나, 아마도 이 건물을 기증한 사람인 듯하다. 대웅전에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는 사자를 먹고 있는 용의 모습이 조잡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벽에는 이곳에 대한 설화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800년 전 숲 속에서 황금색 커다란 붓다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영험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그 자리에 절을 세운 모양이다. 나도 무릎을 꿇고 간절하게 소망을 빌어본다. 뒤뜰에는 연륜이 있어 보이는 커다란 째디(탑) 한 기가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데, 그 형식이 특이하다. 사각으로 단조롭고 차가운 느낌이 나는데 올라가면서 선이 약간 동그랗게 말려 올라간다. 얼마나 오래전에 의식을 치렀을까, 제단이 반쯤이나 허물어져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대웅전 뒷문에는 깊게 파인 양각, 장인의 정성이 보이는 듯하다.
◆분주한 노바스들
왓들은 거의 가까운 거리에 붙어 있다. 근처에 있는 다른 왓의 정문 기둥에도 노바스들이 붙어 꽃과 가지들로 장식하느라 분주하다. 그 옆으로는 작은 연못이 있고 누각 한 채가 물 위에 떠 있다. 아담한 대웅전은 외장부터 무척이나 화려하고, 째디는 단아하고 균형감이 있어 보이는데, 빙 둘러 12지신상이 새겨져 있다. 입구에는 동네 노인들이 어디선가 바나나 둥치를 잘라와 단장하고 일부는 대나무로 만든 파빠(보통은 대나무발 사이에 돈을 꽂아 소원을 빈다)에 오색 종이 깃발들을 꽂고 있다.
옆으로 큼지막한 북이 있고 여러 개의 북이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길손들에게 목을 축이라고 란나 시대 사람들이 쓰던 붉은 질그릇으로 된 물통이 세 개 놓여 있다. 그 옆에 예쁜 종각이 하나 높이 솟아 있는데 그 크기에 비해 종이 아주 작다. 후원으로 돌아가니 칡처럼 굵은 뿌리가 얽히고설킨 나무들이 거대한 숲을 만들어 어두컴컴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으면 뿌리들이 마치 몸통 밖으로 튀어나온 듯하다. 옆에는 이끼를 머금은 발우 뭉치가 무더기로 버려져 있는데 일부는 깨져 있다. 오랜 시간 이 절에 머문 스님들의 것일까. 그 뒤로 신전처럼 생긴 작은 사당이 여러 개 놓여 있으며 안은 역시 지저분하다. 다시 앞마당으로 나오니 빨간색 칠을 한 작은 누각 하나가 네 기둥 위에 올려져 있다. 그런데 올라가는 곳이 없다. 사다리를 대야만 올라갈 수 있는데 이 절에 역사가 새겨진 문서고라도 되는지, 굳게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다. 사악한 기운이나 도난을 막기 위해 그러한 듯하다. 그 옆으로는 어떤 의식에라도 쓰이는지 긴 대나무가 있는데, 계단처럼 짧은 가지들을 계속 꽂아 올라갔다. 회랑으로 만든 듯한 기다란 건물에는 승려와 사내들이 앉아 칼을 간다. 나무 위에 장식할 문양들을 새길 모양인데 그 솜씨에 지나온 세월이 묻어난다.
호수에 올려져 있던 누각 옆으로 많은 양의 약수가 나오고 동네 사람들이 물통을 받치고 있는데 인근에서 꽤 유명한 모양이다. 안내판을 보니 먼 옛날 이 자리에 두 명의 순례자가 머물고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왓을 세웠다고 한다. 회색빛 옷을 입고 커다란 물통을 내리는 아낙, "한 통에 30바트, 두 통에 60바트"라고 내가 장난을 하자 그녀가 해사하게 웃는다. 잠시 무료한 한낮의 농담 속에 자신은 이 마을 출신이며 인근 마을에서 수녀로 있다고 한다. 난간 하나하나에 새겨진 섬세한 문양들을 보니 주지 스님이 누구신지 그 안목이 보이는 듯하다.
◆핸드 메이드 마을(Hand made village)
오지로 갈수록 수십 년, 많게는 수백 년 된 마을들에서 만드는 전통 물건들을 볼 수 있다. 마을 한가운데 사람들이 동전을 넣고 물을 사 먹는 시설이 보인다. 노점에서 14세 소녀가 쏨탐(파파야를 무채처럼 썰어 만든 무침)을 파는데, 손매가 야무지다.
현지 여행자들이 고급 외제 오토바이를 타고 간간이 지나간다. 동남아는 대부분 남녀, 아이들을 불문하고 오토바이를 타니 시내에도 도로가 따로 있고 차들도 피해주어 그나마 탈 만하다. 아직 녹색빛이 가시지 않은 들판, 군데군데 보이는 농막이 평화스럽다.
핸드 메이드 센터(Hand made Center)까지 있는 '통파이 위빙 마을'(Tongfay Weaving Village)에는 서너 군데 가게가 있는데 한산하다. 매장 안에는 콘무앙(란나)족과 깔리양족의 옷이 많이 진열되어 있으며, 몽족과 르와족의 옷도 보인다. 옆집 마당에 베틀 앞에 앉아 천을 짜는 할머니, 나이를 물어보니 50세라고 해 깜짝 놀랐다. 그 옆에 남편과 손녀도 앉아 돕고 있다. 베틀 앞에 앉아 실을 걸고 한 줄 한 줄 콘무앙족의 옷을 짜는 모습이 옆에서 보기만 해도 눈이 피로해지고 현기증이 날 것 같은데, 그 사이사이 무늬까지 집어넣는다. 수많은 세월 그렇게 해왔을 것이다. 그 공력 앞에 이내 마음이 고요해진다.
가장 고가가 6천700바트(26만8천원) 정도 가는데 감히 깎아달라는 말을 못하겠다.
윤재훈 (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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