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의료인문학연구회에서 '의학과 인문학의 만남'이란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전통적으로 서양의학은 질병의 원인과 진단, 치료, 예방에 초점을 두고 발전해왔다. 그러나 최근 의과대학들은 전인적인 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해 의대생들에게 다양한 인문학적 경험과 소양을 키울 수 있는 과목들을 개설해 수업과 실습을 병행하고 있다.
20세기는 분할된 전문 지식의 시대였지만 21세기는 통합된 거대 지식의 시대다. 이 같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통섭'(統攝)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통섭이란 '큰 줄기(統)를 잡다(攝)', 즉 '서로 다른 것을 한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의미로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미국의 세계적인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사용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최재천 교수가 '통섭'으로 번역했다.
통섭적 사고는 21세기 사회 모든 분야에 혁신적인 변혁을 가져왔다. 고인이 된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는 혁신적인 스마트폰을 개발해 IT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자신의 창의력은 단순한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인문학적 기초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로 "언제나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으면서 양쪽의 장점을 얻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통섭과 융합은 박근혜정부의 국정 목표인 창조경제의 핵심 개념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필자도 대학 시절 우리나라 고적 답사 동아리에 가입해 방학 때마다 전국의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인문학을 전공한 선후배들과 역사와 문화, 사상에 대해 밤을 새우며 토론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의대에서 환자 진료와 학생 교육을 병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최근 많은 대학에서 '인문학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 대학의 인문사회학과를 통폐합하고 관련 학과들의 학생 정원을 줄이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배경에는 잘못된 교육정책이 있다. 고교생들은 학업 부담과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인문사회 과정과 수리과학 과정으로 나누어 공부한다. 그중 일부 과목은 선택과목으로 지정해 수학능력시험을 본다. 학문 간의 통합적 사고가 결여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나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는 다행스러운 소식도 들린다. 미국 하버드대학 정치철학교수인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최재천 교수의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 강의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은 학문의 경계를 넘어 통섭형 인재가 요구되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유홍준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안동 편에 재미있는 구절이 있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이 무덤에 계신 분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 장인이다'에서 이 무덤은 누구의 무덤일까? 정답은 어머니다.
고석봉 대구가톨릭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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