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전쟁이 발발하기 23년 전(1838년) 28세에 불과한 링컨은 미국을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지켜야 할 책임이 시민에게 있음을 청년들에게 호소했다.
"우리에게 위험은 어떻게 다가올까요. 강대국들이 태평양을 건너 진군해올까요.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신대륙에 위험이 닥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 내부 문제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대륙을 개척해온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서로 화합해서 살아남든가 다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남북 갈등을 노예해방으로 풀어낸 링컨과는 달리 우리는 개화파와 훈구파가 싸우느라 나라의 새판짜기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주권을 빼앗겼다. 나라가 망하던 무렵, 전국에서 나라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국자는 대략 90명이다. 이름과 출신이 확실한 순국자가 70명, 그 가운데 61명이 독립유공자이다. 전국의 순국자 가운데, 경북 출신은 19명, 포상자는 17명으로 위기의 나라를 구한 경상도라는 말은 이런 데서 유래한다.
순국자 가운데 곡기(穀氣)를 입에 대지 않은 자정순국(自靖殉國)자는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을미사변(1895년), 단발령(1895년), 외교권을 빼앗긴 을사늑약(1905년),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1910년)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왔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몸을 해치지 않으면서 목숨을 담보로 구국 정치 투쟁을 벌인 자정순국의 길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는 자정순국에 이르기까지 단식 기간은 대개 20일 전후이다. 예안의병장 출신 향산 이만도가 단식한 지 24일 만에, 환갑을 넘긴 사간원 정언 출신 의병장 이중언은 단식 27일 만에 순국했다.
향산의 단식을 막으려고 온 집안이 '동조 단식'에 나섰다. 동생 만규가 따라 죽겠다고 통곡했고, 아들 중업을 비롯한 집안 모두가 굶기 시작했다. 후손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여러 번 권해도 소용이 없자, 향산은 '동조 단식'을 그만두지 않으면 자결하겠다고 선포했다. 가솔 모두가 피눈물을 머금고 입에 음식을 댔다.
며느리 김락 여사가 올리는 물 한잔은 받아 마셨다. 훗날 "물 한 잔 못 올렸다"는 괴로움을 덜어주려는 배려였다. 단식 17일째, 물마저 끊었다. 때때로 마신 물이 오장육부를 적셔주어 '오래' 죽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단식 21일째 일본 경찰들이 향산에게 강제로 미음을 먹이려고 하자 기력이 떨어져 혼절했던 향산이 소리쳤다. "어떤 놈들이 나를 설득한다는 것이냐." 사흘 뒤, 향산은 순국했다. 나라를 구하지 못한 책임을 '단식 죽음'으로 사죄한 것이다.
단식은 더 이상 쓸 방법이 없을 때 목숨 걸고 하는 정치적인 투쟁이다. 국외에서는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 독립을 위해서 18차례 단식을,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는 죄수들의 인권보호를 위해서 단식을 택했다. 그만큼 명분과 국민적인 공감과 지지가 중요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 정치계에서는 김영삼 대통령이 재야 시절인 1983년 23일간의 단식을 통해 가택연금 상태에서 풀려났고,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 전, 1990년 13일간의 단식을 통해 보수대연합을 막고 평민당을 탄생시켰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정치권 단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42일 만에, 유민 아빠를 찾아갔다가 얼떨결에 단식하게 된 문재인 의원이 9일 만에,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이 24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국민들은 정치권이 입법의 전당인 여의도를 팽개치고, 단식투쟁을 벌이는데 어떻게 생각할까? 한 시민단체는 133일째 입법 활동 제로를 기록한 국회의원들을 직무유기라며 수사를 의뢰했고, 여론은 민생을 돌보라는 국민적 여망을 무시하는 19대 국회의원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고 국회 무용론 내지 해산론까지 거론한다.
국민의 명령을 듣고도 제1야당은 박영선 원내대표 탈당설과 함께 당권 쟁취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보수 대혁신을 내건 집권 여당 대표는 "입씨름 말고 진짜 씨름대회나 열어보라"며 면전 조롱을 당하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눈치 보느라 민생법안의 직권 상정을 미루고 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할 의지가 정치권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링컨의 말이 새삼 우리에게 유효하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실패한다면 그 원인은 주변국 때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때문이다. 국회의원 총사퇴하라는 여론이 심해지기 전에, 통절한 각성이 필요하다.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