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은 반드시 '교육제도 개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개혁의 큰 그림을 그리되 순서를 정해 작은 것에서 시작해 큰 틀을 완성해 나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먼저 '학교 교육의 목표를 '평화'로 바꾸었을 때 거기에 맞는 교육제도는 무엇인가'를 묻고, 다음으로 '그 교육제도는 어떤 순서를 거쳐 달성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전성은의 '왜 교육정책은 역사를 불행하게 하는가' 중에서)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입니다. 열 명 정도의 세입자가 함께 살아가는 다세대 주택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들은 매일 다퉜습니다. 세입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탁기 소음 때문이었습니다. 별도의 세탁실 없이 복도 구석에 세탁기가 있다 보니 그 주변에 사는 세입자는 소음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능하면 자신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시간에 사용해달라고 말했고, 다른 세입자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버텼습니다. 빨래방에 가거나 손빨래를 해도 되지만 경비가 발생하거나 노동력이 너무 많이 든다고 불평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나름대로의 명확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도 타당했으나 결국은 모두가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수와 소수의 대립이었기에 세탁기 주변에 사는 세입자는 다른 세입자로부터 공동의 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아냥을 들었고,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었습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탁기를 비치할 세탁실을 마당에 새로 지으면서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이웃끼리 다투는 상황도 사라졌습니다. 문제는 집의 구조였던 셈입니다.
교육의 문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에서는 수월성 교육을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평등 교육을 말합니다. 어떤 이는 경쟁만이 유일한 제도라고 말하고, 다른 이는 경쟁이 교육을 망친다고 말합니다. 사실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삶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아니 다양한 정답이 존재하는 것처럼 어쩌면 교육도 정답이 없거나 다양한 정답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공학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방법만이 교육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다양한 정답이 존재함에도 하나의 정답에 몰입하는 순간 더 많은 부분이 소외되고 파괴됩니다. 그것이 갈등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바로 그 부분에 정치의 역할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의 정치는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의 몫으로 한정됩니다. 바로 교육의 구조를 바꾸는 일입니다. 반대되는 주장의 어느 한 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장이 의미 있는 선택이 되고, 교육 수요자들은 그 선택의 권리를 누림으로써 만족하자는 것이지요.
'이것만 이루어지면 교육문제는 모두 해결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은 위험합니다. 특히 대학에 적을 둔 교육공학자들에게서 그런 주장을 많이 듣습니다. 사실 그런 주장은 사교육의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육공학자들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이나 그것이 기본적으로 발현되는 교과서 개발에 있어 현장에서 출발하거나 현장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론도 필요하겠지만 초'중등교육의 현장에 들어가서 현장의 풍경을 담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교사의 필수적인 소양에 대한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 차원에서의 재검토도 필요합니다. 그것이 교육 전반에 존재하는 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입니다.
특정한 교육이론을 가지고 그것이 정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얻는 달콤한 명예나 자본에 신경 써서는 안 됩니다. 초'중등교육은 대학 교육공학자들의 밥줄이 절대 아닙니다. 그들의 밥줄은 대학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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