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우리마을 총명학교'…체조·음악에 푹∼ 몸도 마음도 개운
16일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마을회관. 20여 명의 할머니가 이종선 동부보건진료소장의 구령에 맞춰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고, 박수치는 맨손운동을 한참 했다. 이어 스트레칭 로프를 활용해 허리를 굽혔다 펴면서 자꾸만 뻣뻣해지는 몸을 푸는 등 온몸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류명향(86.석적읍 포남리) 할머니는 "총명학교에서 소장님들과 한바탕 운동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고 했다.
앞서 이달 2일 가산면 다부리 마을회관에서는 할머니 15명이 추석을 앞두고는 김정은 금호보건진료소장과 함께 송편을 만들었다. 이날 만든 송편은 맛있는 간식이 됐다.
두 마을회관에 모인 할머니들은 칠곡군이 운영 중인 '우리마을 총명학교'에 참가하고 있는 65세 이상의 경증 치매나 치매고위험군 노인들이다. 우리마을 총명학교는 경상북도가 특화 치매사업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는 '예쁜 치매쉼터'의 일환으로 칠곡군이 진행하는 치매쉼터의 다른 이름이다. 어르신들이 약간의 치매가 있지만 이를 이기고 더 총명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르신들이 행복한 '우리마을 총명학교' 프로그램
우리마을 총명학교는 칠곡군 내 10명의 보건진료소장들이 운영인력과 파트너로 참가하고 있으며, 지천면 금호, 가산면 다부, 동명면 동부, 석적읍 망정'포남, 기산면 봉산 등 6개 보건진료소 인근 마을회관 등에서 진행되고 있다.
총명학교의 운영기간'장소'운영인력'프로그램 내용'대상자'운영물품구입 등은 관계자들이 간담회를 거쳐 결정했다. 특히 프로그램 내용은 경북광역치매센터의 예쁜 치매쉼터 운영 프로그램인 미술'감각자극'음악'신체단련'인지프로그램을 기본으로, 총명학교마다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어르신들의 인지력 강화를 위해 인지재활 워크북을 프로그램 도입부분에 활용하고, 마을별 상황에 따라 조리실습, 지점토 수업을 늘일 예정이다.
총명학교는 마을주민들과 소통이 잘되는 보건진료소장들이 운영인력으로 참가해 대상자 선정과 프로그램 진행에 무리가 없고, 대상자들의 건강상태를 알고 있어 프로그램 진행 중에 혈압'혈당 등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실례로 금호보건진료소 인근 연화리 마을회관 총명학교의 경우 거동과 신체활동이 불편한 어르신들도 진료를 받으면서 열심히 운동을 따라해 즐거움과 웃음을 되찾자 참석률과 만족도가 꾸준하게 높아지고 있다. 유월순(가명'78'지천면 연화리) 할머니는 "집에 있으면 잡생각만 나고 안 아픈 곳이 없는데 총명학교에 오면 정신도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진다"며 기뻐했다.
◆효과 기대되는 좋은 사업이지만 개선 여지도 많아
우리마을 총명학교를 진행하고 있는 보건진료소장들은 "총명학교가 단기적으로 치매예방 효과를 낼 수는 없겠지만, 운영인력과 참가 어르신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으로 미루어 매년 총명학교가 시행되면 장기적으로는 칠곡군 어르신의 건강이 크게 증진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남희 포남진료소장은 "처음에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 소극적으로 프로그램을 시작했지만, 어르신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서로 소통하면서 이젠 적극적인 자세가 됐다"며 "어르신들이 참가할 때 즐겁거나 재미있어하기만 해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업"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사업 효과나 매끄러운 사업 진행을 위해선 개선해야 할 것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효과 극대화를 위해선 운영진이 참가 노인 각자의 상황'태도'신체상태 등을 알고, 지나치게 가르치려 들거나 상당히 높은 수준의 프로그램을 진행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지적됐다. 게다가 총명학교는 보건진료소 중심의 운영이라 프로그램 진행 동안은 보건진료소를 비워야 한다는 것과 교통 불편에 따른 물품 배부와 교환의 어려움도 개선사항으로 지목됐다.
특히 건강교실 대부분이 오후에 분포하고, 개강시간'요일 변경 및 대상자 정보 획득의 어려움, 높은 문맹률, 홀몸노인 증가 등이 총명학교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해결돼야 할 애로점으로 꼽혔다.
칠곡군보건소 김병선 치매사업 주무관은 "우리마을 총명학교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속'발전과 보완'개선이 적절히 맞물려 진행돼야 한다"고 했다.
칠곡 이영욱 기자 hello@msnet.co.kr
◇영덕 '아름다운 뇌 인생'…치매 병마 털고 다시 장사 시작 '기적'
"♪♪♩♬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부드러운 아코디언 반주에 맞춰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른다. 치매쉼터 운영자들과 함께 손뼉을 치면서 어깨를 연신 좌우로 흔든다. '세월아 비켜라' 대목에선 목소리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영덕군 병곡면 괴시리에 있는 경로당에서 열린 '치매쉼터' 프로그램에 참여한 70, 80대 어르신들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다.
영덕군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30%를 넘어선 지 오래다. 어르신들이 많은 만큼 치매 가능성도 더 클 수밖에 없어 경북도의 '예쁜 치매 쉼터' 사업이 더없이 반갑다.
경상북도가 특화된 치매사업 중 하나로 진행하는 '예쁜 치매 쉼터'의 영덕 이름은 '화이팅! 아름다운 뇌 인생'이다. '내'와 '뇌'의 비슷한 발음을 음차했다. 보건지소, 경로당 등에서 일주일에 두 번씩 치매예방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치매쉼터 프로그램을 통해 기적을 경험
이정숙(39) 병곡면 보건진료소장은 올 상반기 병곡면에서 치매쉼터를 꾸며 어르신들을 모셨다. 생활습관을 바꾸면 치매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노인들을 불러모았다.
영덕군 병곡면 금곡1리에 사시는 변모(73) 할머니는 "경로당에서 화투를 치거나 텔레비전을 보며 생활했는데 치매쉼터로 꾸미니 생활이 즐겁다. 치매쉼터 프로그램을 하는 화'목요일이 기다려진다. 날마다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변 할머니는 "함께 웃고, 노래하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1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른다"며 이 소장의 손을 꼭 잡고 고마워했다.
홍인자(50) 방문간호사는 강구 오포2리에서 기적을 경험했다. 혼자 사는 오모(79) 할머니의 깜짝 놀랄 만한 변화를 보고 난 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오 할머니는 지난해 9월 치매 진단을 받고 약을 먹으며, 혼자 집에 있어 외롭고 우울했다고 한다.
"보건소 선생님이 경로당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서 억지로 나왔지요. 그런데 다같이 모여 손뼉치고, 체조도 하고, 그림도 그리니 밥맛도 새로 생기고 머리도 맑아졌습니다. 치매 때문에 중단했던 젓갈 장사를 다시 시작했어요. 보건소 선생님들이 얼마나 우리를 위해 애쓰는지 몰라요. 젊은 선생님들을 보니 더욱 힘이 납니다." 오 할머니는 홍 간호사를 꼭 안아주었고, 홍 간호사는 "정말 가슴 뭉클했고, 힘든 중에도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보람 느끼며 과외 일도 마다하지 않아
영덕군 보건소의 '화이팅! 아름다운 뇌 인생' 프로그램은 음악과 색칠놀이 등 다양한 인지 강화 프로그램을 통해 어르신들의 감정과 인식을 일깨우고 있다.
영덕군 보건소 프로그램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운영자들의 열정이다. 운영자들은 이른바 운영자 밴드를 운영하고 있다. 밴드 사이버 공간에서 그들의 경험과 느낌, 그리고 각오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과외 일도 그들은 마다하지 않는다.
영덕군 병곡면 백석2리 치매쉼터는 원래는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병곡면 금곡리 운영자로 활동하는 이정숙 보건진료소장에게 인근 백석2리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는 왜 빼놓느냐"는 어르신들의 원성(?)이었다.
이에 이 소장은 '번외 쉼터' 봉사를 기꺼이 자청했다. 유언장 쓰기, 노래하기, 동화책 읽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이어가자 어르신들의 호응은 대단했다. 운영 프로그램에 있는 마을만 다니는 게 아니었다. 어르신들이 원한다면 과외 일도 기꺼이 하는 운영자들의 정열이 곳곳에 드러났다.
'화이팅! 아름다운 뇌 인생'의 총괄담당인 서윤자(43) 씨는 "경북도 예산이 상반기보다 수천만원 증액되면서 운영자들이나 담당자들의 책임감이 더욱더 무겁다. '화이팅! 아름다운 뇌 인생' 쉼터가 상반기 5곳에서 하반기엔 7곳으로 늘어났다. 10여 명의 똑같은 운영 인원이지만, 어르신 인구가 많은 영덕에서 우리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기에 더욱 힘을 내고 있다. 치매 쉼터에서 즐거이 웃는 어르신들에게서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볼 때 정말 기쁘다"고 했다.
치매쉼터로 지정된 경로당에서 매주 2회씩 열리는 영덕군 '화이팅! 아름다운 뇌 인생' 프로그램은 상반기 3~6월에 치러졌고, 두 달의 재충전을 끝내고 이달 15일부터 11월 20일까지 하반기에도 계속된다.
영덕 김대호 기자 d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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