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쌀시장 내년 전면 개방…"나중엔 세율 인하 뻔하다"

최고 관세 513% 매겼지만…"올 것이 왔다" 불안한 농민들 잇단 시위

18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 새누리당 경북도당 앞 도로에서 전국농민회 경북도연맹 소속 농민들이 정부의 쌀 시장 전면개방에 대한 항의 표시로 농산물을 실은 상여를 불태우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18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 새누리당 경북도당 앞 도로에서 전국농민회 경북도연맹 소속 농민들이 정부의 쌀 시장 전면개방에 대한 항의 표시로 농산물을 실은 상여를 불태우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한창 무르익어가는 벼를 바라보며 농업인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다. 내년부터 쌀시장 개방이 현실화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의성 단북 이연 들녘에서 한 농민이 자신의 논을 바라보며 속이 타는 듯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희대 기자 hdlee@msnet.co.kr
한창 무르익어가는 벼를 바라보며 농업인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다. 내년부터 쌀시장 개방이 현실화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의성 단북 이연 들녘에서 한 농민이 자신의 논을 바라보며 속이 타는 듯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희대 기자 hdlee@msnet.co.kr

정부가 쌀 관세율을 513%로 확정, 이달 중 세계무역기구(WTO)에 이를 통보하기로 함에 따라 내년으로 예정된 쌀시장 개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부는 "최고 수준의 관세율을 적용, 쌀농가 피해를 최소화했다"며 쌀농가 보호 대책까지 내놨지만, 자유무역협정(FTA)이 잇따라 체결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율의 관세율이 계속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농민은 극소수다. 결국 관세율이 차츰 내려가 저가의 수입쌀이 우리나라 시장을 잠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쌀시장 개방은 '쌀농사 붕괴→채소 등 대체작물 재배농 폭증→농산물 가격 동반 폭락→농업 기반 붕괴'라는 메가톤급 충격을 불러올 수 있어 정부의 이번 발표가 전국 최다 농가가 있는 농도(農道) 경상북도에 초강력 태풍으로 몰아닥치고 있다.

◆농업인들 강력 반발

농업인들은 "정부가 식량주권을 내팽겨쳤다"며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은 농업인 7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8일 오후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공원에서 수성구 범어동 새누리당 대구경북당사까지 2.7㎞를 행진하며 '쌀 관세화 전면 개방 철폐'를 요구했다.

이날 시위에서 박성열(52) 상주 공성농민회장은 "쌀 수입 관세가 513%로 확정됐는데 얼마 동안 적용될지 알 길이 없다. 농작물이 팔리지 않아 농가에 적자만 쌓이는 데도 정부는 모른 체한다"고 분노했다.

남주성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 의장은 "농민들의 분노를 안고 더 큰 싸움을 준비하겠다"며 향후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했다.

전농과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등은 같은 날 오전 정부 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쌀시장 개방 저지를 위한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가 국민적 합의가 없는 일방적인 쌀 전면 개방을 강행하고 있다"며 "고율 관세를 유지하기 위한 대책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쌀을 제외한다는 약속,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은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경북도 내에서는 다음 달 2일 경북도청 앞 광장에서 농업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다.

◆관세율 높은데 왜 반발하나?

농업인들은 "정부가 쌀 관세율을 513%로 올려 부과하면 수입쌀 가격이 국내산 쌀에 비해 2, 3배 비싸기 때문에 오히려 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만, 쌀시장을 한번 개방하면 수입쌀 공세를 당할 수 없다"며 "국내 쌀농가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로 정부가 식량주권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구미 한국농업경영인회 이재구(54) 회장은 "관세율을 높여 당장은 견딜 수 있겠지만 5~10년 이후가 문제다. 관세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떨어지기 마련이고 언젠가 관세율이 현실화되면 농민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김재수(60) 김천 쌀전업농연합회장은 "23.1㏊(7만 평)의 쌀농사를 짓고 있는데 정부가 9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올려 준다는 직불금으로는 쌀 관세화로 피해를 입는 농민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장현(62) 쌀전업농 고령군회장은 "쌀 관세율 513% 확정은 결국 세월이 지나면 쌀 관세가 없어지는 절차를 밟는 것"이라며 "쌀은 우리 농업의 근간인데 이를 내주면 다른 농업작물도 연쇄적으로 무너져 식량자급기반이 무너질 것"이라고 했다.

황갑식(66) 영주 안정농협 조합장은 "정부 발표가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지금 고율의 관세율을 정한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부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두종(56) 한국쌀전업농 청송군연합회장은 "정부가 513% 쌀 관세율을 고정한다면 나쁘지 않다. 하지만 500% 이하로 곧 떨어질 것이 뻔한데 이럴 경우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에서 들어오는 쌀이 가격 경쟁력을 갖게 돼 우리 농가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했다.

김해환(49) 한국농업경영인회 청송군연합회장은 "정부가 발표한 관세율이 지금 만족스럽다 해도 몇 년 못 버틴다. 고정적 관세율을 정부가 담보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정부는 어떤 대책이 있나?

정부는 18일 수입쌀에 적용할 관세율을 513%로 결정하면서 쌀산업 발전대책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농가소득 안정을 위해 현행 쌀직불금 제도를 손봐 당초 2017년까지 ㏊당 100만원으로 인상할 계획이었던 쌀 고정직불금을 내년부터 ㏊당 100만원으로 조기 인상한다.

산지 쌀 가격이 목표 가격(Target Price)보다 떨어질 때 지급하는 변동직불금은 쌀값 하락 시 소득안정 효과가 높아 현행 방식을 유지하지만, 벼 이외 다른 작물을 재배해도 변동직불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변동직불금 미지급 농가와 대규모 농가의 경영안정을 위해서는 '수입보장보험' 도입을 추진한다. 수입보장보험은 농산물 수확량 감소나 가격 하락으로 농가의 품목별 수입이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보험이다.

정부는 또 평균 경작 면적 200㏊ 이상의 들녘경영체(50㏊ 이상의 집단화한 들녘을 공동 생산'관리하는 경영체)를 현재 158곳에서 2024년까지 60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장비'컨설팅 지원 규모와 지원 장비의 범위를 확대하고 들녘경영체 법인에 대한 쌀직불금 지급 상한을 현행 50㏊에서 400㏊로 인상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2024년까지 경작 규모 6㏊ 이상의 쌀 전업농을 3만 가구로 늘리고, 쌀 전업농의 재배면적을 전체 벼 재배면적의 4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고부가 쌀 생산을 위해 특수미 종자 보급률도 지난해 30%에서 2022년까지 75%로 확대하고, 생산'유통단계에서 들녘 단위로 품종을 통일해 공동출하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유기농 쌀 재배를 확대하기 위해 내년부터 '유기지속직불금'을 도입하기로 하고 내년 예산안에 59억원을 새로 반영했다.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수요자 중심의 쌀 요리를 개발하고 미래세대 식습관 교육'홍보를 강화하기 위한 예산을 지난해 35억원에서 내년엔 55억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 밖에 쌀 가공산업을 고부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쌀을 활용한 고급 주류와 '제2의 햇반' 등 쌀 가공제품을 개발하고, 쌀 생산자 주도의 소비촉진, 홍보, 생산'유통 개선 활동을 위해 쌀 자조금 도입 여건을 조성하기로 했다.

◆"다른 보완 대책도 필요하다"

농업인들은 "FTA는 농민을 볼모로 제조업체가 이득을 챙기는 만큼 그 이익을 농업인들에게 돌려주는 FTA 이익공유제를 법제화해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석청쌀'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는 윤병규(58'칠곡군 석적읍) 대표는 "무역을 위해 쌀 수입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정부가 얘기하는데 그렇다면 쌀 수입으로 쌀산업은 손해를 보지만 반대로 득을 보는 산업도 있다"며 "득을 보는 쪽에서 손해를 보는 쪽으로 지원이 이뤄져 부의 공평한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김하연(55) (사)한국농업경영인 칠곡군연합회 회장은 "근로자는 최저임금제가 있어 최저생계비가 보장된다. 쌀이 수입되면 쌀산업 농업인은 현재보다 소득이 낮아지는 일방적 피해를 입는다. 따라서 농민에게도 최저 소득을 보장해줄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호삼(56) 쌀전업농 영덕군연합회장은 "정부가 고품질 쌀을 생산하라는데 그렇다면 고품질화를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지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태 국회의원(새누리'상주)은 "고정직불금 및 이모작직불금 인상, 농업자금 금리인하, 농지매매사업 단가 인상, 쌀소비 촉진 확대 등을 정부가 최대한 수용하도록 건의하는 한편, 쌀 고율관세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도록 관세율을 법률로 명문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사회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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